중학교 3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 당시 전교 1등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한문 선생님께서 물었다.
00아. 계속 전교1등을 하는 공부비결이 뭐니? 아이들한테 좀 알려줘라.
사실 특별하게 내가 아둥바둥 노력을 하거나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기에 무심결에 내 생각을 말하고 말았다.
별거 없는데요... 음...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거??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서 그렇게 대답했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친구들에게 자기 공부비법도 안가르쳐주는 쪼잔하고 이기적이고 오만한 놈으로 낙인 찍혔다.
15년이 지나서 그날의 해프닝을 떠올리면서 정말 진지하게 그 당시 내가 성적이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머리가 좋거나 공부에 타고나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아니다. 난 배우는게 남들보다 상당히 느리다. 무엇을 배우던지 너무 느려서 친구들이 '쟤 공부잘하는거 맞아?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읽었다던 '아주 작은 습관의 힘'도 완독하는데 10시간, 재독하는데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럼 이렇게 배움이 느린 내가 전교1등을 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 아주 작은 습관과 환경설정의 힘
당시에 나에게는 이런 습관이 있었다.
- 수업이 끝나고 나서 모르는 것은 선생님한테 가서 질문하기. 선생님이 안계실 때에는 알만한 친구한테 가서 물어보기.
- 아침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영어 공부하기.
- 학교 마치자마자 친구들이랑 농구 3시간하기.
-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 독서하기.
- 잠은 최소 8시간 이상 자기.
그리고 이런 환경설정이 되어있었다.
- TV와 컴퓨터, 폰이 없었음. (초6~중1 때 집에서 계속 컴퓨터랑 TV만 하니깐 TV는 아빠가 컴퓨터는 엄마가 부숴버림...)
- 엄마가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으셨음.
- 영재센터를 다님.
그럼 한 번 중3 때의 내 습관들을 분석해보자. 매일 운동, 충분한 수면으로 인해 공부를 할 수 있는 체력과 두뇌 회전력은 아주 좋았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하는 습관은 input 이후 바로 output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렵게 지식을 얻을수록(=output) 우리는 오래 기억을 할 수 있다.(=장기기억)
모르는 것은 바로 질문하기 습관과 충분한 운동, 수면습관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배운 지식들을 장기기억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난 시험 기간 외에는 따로 학교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환경요소들을 살펴보자. 우리집에는 TV와 컴퓨터가 없었다. 이 사실은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 드라마를 보거나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꿔 말하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에 투자하는 시간은 줄고 도움이 되는 행동들(독서, 운동,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의미했다. 또한 이주일에 한 번씩 영재센터에 다니면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공부자극을 받았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뭐야! 노력하지 않았다면서! 안 똑똑하다며? 할거는 다했네. 공부를 잘할 수 밖에 없는 습관과 환경이잖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당시에 학습에 좋은 습관과 환경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공부를 하면서 노력은 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말일까?
2. 습관의 형성과정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습관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1. 신호 → 2. 열망 → 3. 반응 → 4. 보상
이 4단계로 인해 우리의 행동이 변화하고 습관이 형성된다. 1,2,3은 행동을 하게 만들고 4는 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행동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어감에 따라 점점 시스템2(이성, 의식적인 뇌의 기능)보다는 시스템1(느낌, 무의식)의 관할이 넓어지게 된다. 어떤 행동이 시스템1(무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록 그 일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적다.
예를 들어보겠다. 작년 2월에 나는 운전을 처음 아빠에게 배웠다. 처음 내 차를 보자마자(신호) 나는 운전을 열심히 배워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싶다는 욕망과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이 생길거라는 기대를 품었다.(열망) 이 열망은 나를 운전연습이라는 행동으로 이끌었다.(반응) 운전연습 후 내가 운전을 해서 멀리 있는 곳에 갔다는 성취감과 신기함, 그리고 생각보다 운전을 괜찮게 한다는 아빠의 칭찬은 나를 기쁘게 만들었고(보상) 계속 운전연습을 하게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 운전할 때에는 혹시나 맞은편에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달려오지 않을까, 고속도로에서 사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신호 받고 좌회전을 할 때 맞은 편 차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주차를 할 때 긁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의식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써가며 운전을 했다. 옆에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운전하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그러다 점차 운전을 하면서 내 뇌는 차 운전에 필요한 신호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차들이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고속도로에서 사람이 나오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점차 운전은 나에게 의식적이고 힘든 행위에서 무의식적이고 편한 행위로 넘어가게 되었고(시스템2→시스템1) 지금은 출근길과 퇴근길에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운전을 하고있다.
마찬가지로 중3 때 내가 매일 공부를 하면서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는 공부가 이미 습관이 되어 시스템2에서 시스템1로 관할이 넘어갔고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 꾸준히 행동들을 하게되었다는 뜻이다. 마치 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공부가 습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습관의 좋은 점은 의식적인 에너지를 아껴 나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행동에 더 많은 의식적인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좋은습관을 길들이는 것의 중요성은 이제 알았을거라 본다. 그렇다면 습관을 쉽고 빠르게 형성하는 좋은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