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몇 달 전부터 난 다시 슬럼프에 빠져있는 상태다. 3년 전 악몽 같은 1년을 겪은 뒤로는 다시는 절대 슬럼프를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역시나 '절대'란 없었다. 나의 몇 가지 부주의한 작은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슬럼프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찾아왔다.
시작은 사소했다. 올초, 8개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브런치 글을 1일 1편씩 써온 나에게 1주일이라는 휴식을 보상으로 주기로 했다. 간만의 휴식에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구가 터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게임은 끊은 지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하고 싶었다.
'게임하고 싶다... 웹툰도 보고 싶고... 근데 게임이랑 웹툰은 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잖아. 심지어 브런치 독자님들한테도 웹툰 끊기로 공언했는데... 안 돼... (한참을 고민) 그래 게임은 좀 그러니깐 웹툰을 조금만 보자. 양심에 찔리지만 그래도 잠깐 보는 건 괜찮겠지?'
5개월 동안 참다가 본 웹툰은 정말 꿀맛이었다. 때마침 방학중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웹툰을 봤다. 그날 보고 바로 그만뒀어야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을 후회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작가 제임스 클리어 작가님이 그랬었나.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은 절대 안 된다고. 두 번째부터는 습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위험하다고... 하루 종일 웹툰을 보던 나는 다음날에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웹툰을 보고 말았다. 양심? 물론 찔렸다. 나 자신과 독자님들께 부끄러웠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 세 번, 여러 번이 반복되니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난 악마의 유혹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웹툰 보기는 나도 모르게 나의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욕망에 굴복하고 그것에 빠지다 보니, 머리 쓰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 하기가 싫어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더 쉬다가 글 써야지. 그동안 고생했잖아. 그래, 좀 쉬고 다음주부터 글쓰기를 하는 거야!'
나에게 일을 미루는 습관이 생긴 걸까? 난 다음주를 다음주로 계속 미뤘고, 할 일을 미룰 때마다 죄책감은 쌓여만 갔다.
올초 좀 무리해서 집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전세계약이 1년이나 남아 있고 임대차3법이 있어서 '연장할 수 있겠지. 아니면 웃돈 주고라도 연장해야지.'하고 그때까지 별생각 없이 여유 부리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집을 팔겠다고 했다. 웃돈을 준다해도 전세 재계약은 하기 싫다 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본인이 와서 살겠다고 했다.(참고로 집주인 집은 적어도 10채 이상)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법적조치도 취하겠다고 했다. (막판에는 좀 재수 없었지만, 물론 집주인 입장은 이해한다.) 전세와 매매가격이 별 차이도 없고, 더 이상 집값이 떨어지기는 힘들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원래 살던 집을 구입했다.
집계약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돈'이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그동안 어렴풋이 느껴오던 감각을 집계약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돈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돈이 없으면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였다. 내가 주식에 집착을 하기 시작한 게. 당장 나에게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건 주식밖에 없었다. 그전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주식을 했다면, 집구입 이후로는 필사적으로 주식공부를 했다. 나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아니면 운이었을까. 꽤 큰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려야 된다는 생각에 무리한 투자를 했고,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걱정 속에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의식이 온통 미래에 가있으니, 현재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돈을 벌어도 그다지 즐겁지가 않았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 계속 느껴지는 죄책감들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원하는 삶(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을 현재 살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 약속을 어겨 구독자를 기만한 것에 대한 죄책감.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사실 올해는 나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꽤 있었다. 반강제적(?)으로 체육전담교사를 하는 바람에 담임교사를 할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전담교사는 담임교사와 달리, 학생 개개인 관리나 학부모 상담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다.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편해 좋았으나, 반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아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년, 재작년, 반 아이들, 학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기쁨에 살던 나였다. 밤늦게 통화를 하더라도, 심지어 몇 시간을 통화하더라도 학부모나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무 불평불만 없이 즐겁게 상담을 하던 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설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매일 저녁 줌스터디를 운영했던 나였다. 올 5월 중순, 작년에 졸업을 한 몇몇 아이들과 매일 저녁마다 계속 이어갔던 줌터디마저 해체하면서 나의 무기력증은 더 심각해져 갔다.
그동안 난 웹툰을 보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겼고, 집구입 이후 돈에 집착했으며, 학교에서는 무기력한 삶을 보내왔다. 작년에 한땀한땀 설계해놓은 자기계발 환경설정은 진작에 무너졌고, 몸과 마음은 엉망이 되었다. 몸관리를 하지 않아 최근 건강검진에서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으며, 스스로 약속과 계획을 하도 안 지켜서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은 바닥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다. 나의 부주의한 작은 행동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불과 6개월 만에 말이다.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부정적으로 흘러가던 기류를 반대로 바꿔보려고 한다. 3년 전에 게임 폐인, 직장 내 왕따, 자존감 바닥이었던 슬럼프에 빠진 내가 불과 3개월 만에 슬럼프에서 탈출한 것처럼 말이다. 이미 예전에 한 번 극복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독자님들의 따뜻한 응원이 필요합니다! ^^)
생각해보니, 내가 슬럼프를 다시 극복하는 과정을 이렇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자기 객관화도 되고 훗날에 내가 또 슬럼프를 겪었을 때 참고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무엇보다 내 글이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아직 본인도 슬럼프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ㅎㅎ)
슬럼프 탈출을 향한 교실남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행보를 지켜봐 주시라.
ps 독자님들, 그동안 몰래 약속 어겨서 죄송합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본을 보여야 할 선생님이... ㅠㅠ 지금 이 순간부터 독자님들과 제 자신에 부끄럽지 않도록 약속을 잘 지키는 교실남이 되겠습니다.
#진솔하게글을쓰니 #부끄러우면서도 #속이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