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한 질주
오늘 새벽 부끄러운 고백글을 다 쓰고 나서 시계를 보니 3시가 넘어 있었다. 늦었다. 잘 시간이다. 하지만 요 며칠 새 밤낮이 바뀐 탓인지 아니면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리고 왠지 이대로 자버리면, 방금 내가 아까 글을 쓰면서 했던 다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잠에서 깨고 나면, 기존의 무기력한 나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획기적인 무언가가 필요해. 지금의 무기력한 나를 리프레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잠깐 고민) 아! 그래! 달리기는 어떨까? 지금 이 시간에 달려본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은데.'
기존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평소 내가 꺼리던 것(운동)을 함으로써 내 행동 패턴과 마음가짐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이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ㅋㅋㅋㅋ 진짜 나도 정신 나간 놈이긴 하다. 이 시간에 달리기라니. ㅎㅎ'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네온사인과 신호등만이 깜빡깜빡 거리며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텅 빈 거리의 모습이 마치 좀비 영화의 도시를 보는 듯하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한 기분을 감추기 위해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새벽이라 몸이 굳어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여져서 깜짝 놀랐다. 좀 뛸만하니 잡념이 생긴다.
'내일 슬럼프에 벗어나기 위한 내 첫 계획은 흠...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발성 연습하고 독서하고 연수 듣고 집 청소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습관대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내 몸은 현재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미래에 가있었다.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워봤자, 제대로 실천할 확률은 제로다. 기존에 정상적인 몸과 정신으로도 실천하기 힘든 계획인데 지금의 상태로는 무리다. 솔직히 현상태로는 할 일 하나 하는 것도 나에겐 벅차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많이 다운된 상태다. 오히려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만 더 떨어진다. 자기혐오의 감정도 생긴다.
'계획은 무슨 계획이야! 지금 달리기도 겨우 하고 있는데, 내가 이 많은 것들을 이 상태로 어떻게 해! 욕심내지 말고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자. 내일 목표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는 거. 그거 하면 스스로한테 칭찬해주는 거야. 자, 이제 생각 끝! 지금 현재에 집중하자. 나의 호흡, 움직이는 팔, 다리의 감각, 앞의 시야에 주의를 기울이자.'
생각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달리기 속도를 높였다. 마치 기존의 안 좋았던 기운들을 내 몸에 떨쳐내려는 듯이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달렸다. 혹여나 안 좋은 기운이 다시 쫓아올까 두려워 달리기 속도를 더 높였다. 하지만 그동안 약해진 체력과 정신력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뭔가 지는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내가 도저히 변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몸 사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미친 듯이 한 번 달려 보기로 했다. 마치 지금 나를 슬럼프 속에 가두고 있는 두꺼운 알을 깨려는 듯이.
미친 듯이 달렸다. 힘들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다리에 점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져도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까까지만 했어도 도저히 더 달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또 달려진다. 이렇게 빠르게 달려본 적은 군생활 이후 처음이었다. 아까처럼 여유 있게 계획을 세울 틈조차 없었다. 한참을 달렸다. 온몸이 떨리고 헛구역질이 날 때쯤 달리기를 멈췄다. 너무 무리하게 힘을 쓴 탓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내 정신은 오랜만의 승리에 취해 오히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맞아. 이 느낌이야. 이 느낌! 바로 이거야!'
#슬럼프탈출 #변화의시작 #임계점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