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Jun 29. 2020

그날 교장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Oh captain, My captain

2018년, 당시 나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마다 다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내가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는 그런 시기 말이다.


갓 부임했을 적에 열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영혼 없이 기계처럼 수업만 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만 남았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보여도, 교실이 엉망이 되어도 그냥 놔두었다. 엉망이 된 교실은 마치 난장판이 된 내 마음 같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직장 동료들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마음도 점점 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에는 학급 운영에 대한 불만을 가지신 학부모님의 민원전화를 받았다.


그냥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더 이상 망가진 내 상태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못난 담임이라서.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내가 이대로 교사를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 끝에, 일단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서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다음 날, 교장선생님과 약속을 잡았다. 목요일 오후 3시에 오라고 하신다.


하지만, 난 목요일 오후 3시에 교장실에 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그것도 교장선생님에게 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날 나는 그렇게 현실을 회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정말 미친놈이었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과의 약속 펑크라니...)


이튿날 아침, 학교 본관 앞에서 교장 선생님과 딱 마주쳤다.

나: '하... 망했다...'
교장선생님: 00아, 어제 약속 때문에 교장 연수도 다 취소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안 온 거니?


당연히 화를 내실 줄 알았던 교장 선생님께서 화를 내시지 않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교장선생님: 오늘 3시에는 꼭 교장실로 와라.




이번엔 도망가지 않고 교장실로 갔다. 더 이상 피하기만 하기에는 교장선생님께 너무 죄송스러웠다. 교장실에 가니,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차를 타 주셨다. 제가 하겠다고 해도 기어코 본인이 하시겠다고 한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 나의 심리 상태, 현재 반의 상황, 교직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말씀드렸다. 더 이상 선생님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렸다. 그 오랜 시간을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장선생님은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시고 경청하셨다. 나의 얘기가 끝나고 교장선생님은 잠시 고민을 하신 뒤 말씀하셨다. 그때 처음 하신 말씀은 너무나 의외이고 충격이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교장 선생님: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너의 상황을 직접 겪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너무 놀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의 상태를 예단하고 바로 별 도움도 안 되는 해결책을 주실 줄 알았는데, 교장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교장선생님: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얘기 한 번 들어보겠니?


아주 겸손하고 담담한 어조로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파란만장했던 신규 시절, 힘들었던 중년교사 시절, 최근 몇 년 사이 생긴 암. 교장 선생님의 인생도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각자 인생에 저마다의 굴곡이 있었다.

교장선생님: 00아. 사실 나는 어떤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살지는 않았어. 그냥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이렇게 하나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그 와중에 행복감도 느끼고.
나: 교장선생님. 실례지만, 교장선생님이 최근에 몸이 안 좋으시잖아요. 가끔 몸이 아플 때, 불행하다고 느끼시지 않으세요?
교장선생님: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젊었을 때 몸을 혹사시켜서 이렇게 몸이 아픈 건데 어쩔 수 있나. (웃음) 나는 이렇게 학교에 나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뭔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교장선생님: 00아. 괜찮다.   (...)   괜찮다.   (...)    괜찮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나는 교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 후, 몇 달이 지났다. 사실 유명 영화처럼 한 순간에 내가 바뀌지는 않았다. 대신에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욕심내지 않고, 내 눈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나갔다.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내 주변 상황들이 점점 나아졌고, 삶의 의욕과 교육에 대한 열정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엉망진창이었던 우리 반도 다시 체계와 질서를 갖추게 되었고, 떠나갔던 아이들의 마음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학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주변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교장선생님은 내 든든한 후원자셨다. 다시 열정을 되찾은 내가, 하모니카 동아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학생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도, 교사 기타동아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항상 응원한다!'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셨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났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그날은 교장선생님의 퇴임식이었다. 나는 선생님들 대표로 교장 선생님 앞에서 015B의 '이젠 안녕'을 불렀다. 교장선생님이 힘든 나를 도와주시고 챙겨주시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노래 가사를 중간쯤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아... 지금 울면 안 되는데...

그날 퇴임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끔씩, 교장선생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Oh captain, My captain


 

이전 04화 저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좋은 교사는 아니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