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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22. 2020

저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좋은 교사는 아니었습니다.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by 니체

2015년은 나에게 최고의 해였다. 3월에 교직에 첫 신규발령을 받아, 학부모, 학생, 동료 선생님 등 많은 사람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은 해였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해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2015년 3월, 첫 발령을 받았을 당시, 나의 교육관은 이랬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교사. 때로는 친구 같은, 때로는 본받을 점이 많은 형 같은 교사.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교사

3월 개학을 하자마자, 당장 나의 교육관을 실천에 옮겼다. '나는 교사'라는 페르소나(가면)를 벗어던지고, 아이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당시 상벌점 제도를 시행했었는데, 나도 아이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상벌점을 받았다. 예를 들면, 내가 밥을 남기거나 지각을 하면 교사인 나도 벌점을 받았다. 수업을 제대로 준비를 안 하거나 수업의 질이 떨어졌을 때도 벌점을 받았다. 반면, 이 수업은 정말로 좋았다고 아이들이 인정하는 경우 상점을 받기도 했다.


수업 분위기도 엄청 허용적인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수업내용과 연관성이 희박한 엉뚱한 질문들에도 다 대답해주었고, 수업시간에 옆 친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것도 허용해주었다. 그때는 바보 같이 그 와중에도,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활발하게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흑역사입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우리 반 수업 분위기가 난장판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ㅎㅎ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친구들이 어릴 적부터 '초딩'이라고 놀렸었는데, 진짜 나는 초딩 기질이 있었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동료 선생님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반 아이들과 만났다. 같이 체육활동도 하고 산에도 갔다. 한 번은 반 친구가 다쳐서, 학교에 며칠 못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반 전체가 그 친구의 집에 병문안을 가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거의 매주 주말, 학교에 나와 수업 준비를 하거나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었고(아이들이 항상 데이트보다 우선순위였다.ㅎㅎ), 과학탐구대회 학생지도, 농구부 운영, 수학영재반 운영 등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열광했다. 어떤 학부모님은 나보고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반 아이들은 평생 나와 같은 반을 하고 싶다고 했고, 옆 반 아이들은 항상 우리 반을 부러워했다. 그 와중에, 나의 오만함은 점점 쌓여갔다. 어떤 때는 '나의 교육방식이 옳고, 다른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팩트는 이렇다. 학교에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 특히 젊은 신규 남자 선생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덕분에 나는 학생, 학부모, 동료 선생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운(=젊은 남교사)내 실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내가 젊어서가 아닌, 내 교육방식이 옳아서, 내가 수업을 잘해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동료 선생님들이 내 교육방식에 대해 진정 어린 조언을 해주시면,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ㅠㅠ)


그래도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1년을 무사히 마쳤다. 종업식 날에는 아이들과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섭섭해 반 전체가 펑펑 울었다. 교육방식은 서툴렀지만, 아이들에 대한 마음만은 정말 내 진심이었다.




나는 바로 군대에 입대를 했고, 2년 뒤에 다시 복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중학생이 된 예전 반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적응을 잘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적응을 못하고 친구들도 있었다.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제일 아끼던 제자가 반에 찾아와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얘기를 하는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너무 가슴이 아팠고 죄책감이 들었다. 꼭 모든 게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제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그동안의 나의 교육을 되돌아보았다.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항상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 그동안 내 옛 제자들과 겪었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과연 그동안의 내 교육이 아이의 미래에 진정 도움이 되었을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나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수업 태도, 생활 습관, 공부 습관,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당장 원하는 수업, 원하는 활동만을 했다. 내가 당장 그들이 바라는 활동들을 하니, 그들은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실력'이라고 착각했다. 그때의 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으나 좋은 교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지금은 좋은 사람이 아닌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예전과는 달리 학생들이 잘못을 하면 따끔하게 혼을 낸다. 학부모님들에게도 자녀에 대한 칭찬만 하지 않고,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말씀드린다. 학생들이 당장 싫어하는 활동이라도, 꼭 학생의 미래에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오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선배 교사님께도 많은 조언을 구했다. 학급경영, 수업방법 등, 그들의 지혜 속에서 많은 꿀팁들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좀 더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학급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매번 배워나갈 때마다, '아직 나는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깨지고 또 깨지면서 앞으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교사'가 되어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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