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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21. 2020

아이는 변할 수 있다. (왕따에서 전교부회장까지)

2015년 3월 교직에 첫 신규발령을 받았다. 4학년 담임에 배정이 되었다. '1년 동안 아이들과 좋은 추억들을 쌓아야지!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주겠지? 재미있는 1년이 될 거 같다.' 잔뜩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서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충격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덩치가 왜소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발로 차이는 것을 보았다. 발로 차인 아이는 욕설로 대응했다. 당장 이들을 말렸다.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하고 내 소개를 했다. 그 후 바로 자리를 바꾸었다.

자리 바꾸기는 제비뽑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또 사건이 터졌다. 자리를 바꿀 때조차 그 아이랑 앉기 싫다고, 짝꿍이 된 아이가 화난다고 그 아이를 밀쳐 넘어뜨렸다.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이렇게 민석(가명)이와 나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개학 첫날부터 멘붕이었다. 재미있는 1년은 개뿔, 최악의 1년이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써 멘탈을 정비하고 '어떻게 하면 반 분위기를 다시 정상화시킬까?' 고민했다. 무엇보다 민석이의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리 반의 왕따 문제를 냉정하게 살펴보았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에게 책임이 있었다. 먼저 민석이는 반 아이들이 싫어할 만한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말 끝마다 욕설에, 모둠 활동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고, 공부도 반에서 제일 못했다.


반 아이들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모둠 활동에서 의도적으로 민석이를 배제한 점, 왕따 당하고 있는 민석이를 바라보기만 한 점, 잘못이 딱히 없는데도 꼬투리를 잡아 순수하게 괴롭히는 것을 즐긴 점 등등...


먼저 민석이를 연구실에 따로 불렀다. 민석이는 자신이 왜 왕따를 당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매일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 조원들, 학원 친구들 등 외부 상황들만 계속 탓했다. 그런 민석이에게 냉정하게 말해주었다. 친구들에게 욕을 하는 점, 모둠활동에 참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점, 학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점 등 친구들이 싫어하는 요소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교사(나): 만약 친구들이 싫어하는 요소들을 네가 고칠 수만 있다면, 친구들은 너를 좋아하게 될 거야!
민석: 아니에요. 예전에도 노력해봤는데 안됐어요. 애들은 계속 저를 싫어할 거예요.
교사(나): 최소 한 달 이상 노력해봤니? 민석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너를 괴롭히던 친구가 하루, 이틀 너를 안 괴롭혔다고 너는 그 친구를 좋은 친구로 받아주겠니? 최소 2~3달은 노력해야 친구들은 네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거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이번 기회에 너 자신을 한 번 바꿔보자!

첫 번째, 욕하는 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환경설정을 위해, 욕을 할 때마다 청소를 하거나 반성문을 쓰는 등 벌을 받기로 했다. 두 번째, 학습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기로 했다. 모둠활동을 할 때,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는 모둠원이 아닌 도움을 주는 모둠원이 되기로 했다. 세 번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항상 누군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한다고 했다. 때문에 민석이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던 친구들조차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피해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다.


반 아이들의 문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반 학생들은 민석이의 행동이 바뀌기만 해도, 그 친구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민석이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몇몇 학생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민석이가 딱히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민석이에게 폭력과 욕설을 행사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에, 예전에 학급경영 책에서 본 '왕따체험'이 생각이 났다. 왕따 가해자들을 직접 왕따체험을 하게 해서, 왕따의 마음을 직접 느끼고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게 하는 체험이었다. 의도는 좋은 체험이었지만, 자칫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민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괜찮은 활동이 될 것 같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먼저 반 아이들에게 왕따 체험 희망자를 모집했다. 운 좋게도, 딱 가해자 2~3명이 손을 들었다. 이들은 잔뜩 신나 있었다. 아주 재미있는 체험이 될 거 같다며, 왕따 별 거 아니라며, 자기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쓴다면서 왕따 해볼 테면 해보라고 했다.


다음 날 왕따체험을 바로 시작했다.


제일 빠르게 손을 든 준수(가명)가 먼저 왕따체험을 하기로 했다. 활동의 내용은 이랬다. 반 친구들 전체가 종이 쓰레기를 뭉쳐서 준수에게 던지는 활동이었다. 준수가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은 계속 종이를 준수에게 던져야 했다. 물론 사전에 준수에게 동의도 다 받았다. 체험 일보 직전 준수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이런 거 하나도 안 두려워요. ㅋㅋ 재미있겠다!! 와!!!!!

왕따 체험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종이를 찢고 뭉쳐서, 준수에게 던졌다. 활동 시작 5분째, 준수는 방긋 웃고 있었다.

준수: 얘들아! 별 거 없는데? ㅋㅋ

활동 시작 10분째, 몇몇 애들이 준수가 반응이 없자, 얼굴 쪽으로 집중해서 종이를 던졌다. 준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활동시작 15분째, 준수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 몇몇 남자아이들이 아예 쓰레받기로 종이를 모아 준수의 얼굴에 부었다. 준수가 이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종이가 날아오면 이제는 손으로 쳐낸다.


활동시작 20분째, 준수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활동시작 23분째, 준수가 펑펑 운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다.


왕따체험 활동을 시작한 지 23분 만에 활동이 종료되었다. 준수는 2교시까지 계속 울었다.


방과 후에 준수를 따로 불렀다.

준수야. 괜찮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마음속에 느껴지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준수야. 오늘 있었던 일, 일기로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다음날 준수는 본인이 겪었던 왕따체험소감을 일기로 써왔다. 자신은 왕따를 당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 말라고 해도 친구들이 계속하니깐 너무 화가 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고 한다. 민석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다.


준수 이후로 더 이상 왕따체험 지원자는 없었다. 왕따체험 전 준수의 웃는 얼굴과 왕따체험 후 준수의 펑펑 우는 얼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왕따가 정말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을 한 것이다.


사실 그 뒤로도 가끔씩 민석이를 괴롭히려는 반 학생이 나타났다. 그때마다 준수가 나타나서 민석이 편을 들어주었다. 3개월 뒤 준수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민석이는 우리 반에 제일 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이다.'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아이들은 참 빨리 배우고 변하는구나!'를 느꼈다.




민석이는 그 뒤로 빠르게 변해갔다. 더 이상 민석이를 괴롭히는 학생들도 없었기 때문에, 성장과 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2학기가 되어서 처음으로 친 수학 단원평가에서 민석이가 100점을 맞았다. 1학기 때 단원평가 점수가 0~30점 정도 수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였다.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발표도 곧잘했고, 모둠활동을 하면서도 더 이상 친구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반 아이들이 민석이를 보는 시선은 조금씩 변해갔고, 민석이가 왕따였다는 사실은 2학기 후반이 되어서는 기억 속에 잊혀졌다. 이렇게 민석이는 완전히 왕따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왕따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너무 기뻤다. 마치 내가 왕따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뻤다. 나로 인해서 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재미를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누다 왕따체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제주도에 한 교사가 초등학교 1학년 대상으로, 숙제를 안 해온 친구들에 한해서 하루 종일 왕따체험을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애들을 사랑하고 잘 대해주는 것도 좋지만, 워낙 민원도 많고 교사들에 대해 인식도 많이 안 좋은 시기니, 그런 오해의 소지를 불러오는 활동들은 되도록 삼가라고, 조심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만약에 준수 어머니가 왜 우리 아들에게 그런 체험을 시키냐고 정신적 보상을 하라고 민원을 제기했다면 나도 징계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뭔가 슬펐다. (사실 이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이후 난 군대에 입대했다. 2017년 4월, 예전 반 아이들을 보러 휴가를 나왔다. 옆 반애들까지 포함해서 70~8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나를 보러 와주었다. 4학년이었던 아이들이 6학년이 되어서 내 앞에 서있었다. 그 작고 귀엽던 아이들이 덩치가 산만해졌다. 어떤 아이들은 나보다 컸다. 변성기가 온 친구들도 많았다.

와... 아이들은 정말 빨리 변하는구나!

아이들과 2시간 동안 예전에 즐겨했던, 피구, 오징어 달구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민석이의 전화였다.

선생님! 학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갔어요...ㅠㅠ 지금 학교로 뛰어가고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세요?


체육관과 본관 사이의 통로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민석이를 마주쳤다. 민석이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선생님! 저 전교 부회장 됐어요!

교직 발령받은 첫날, 아이들에게 발로 차이던 그 작고 볼품없던 꼬마가, 자기는 절대 변할 수 없을 거라고 외부 상황만 탓하던 그 어린아이가 이제 어엿하게 성장해서, 게다가 전교 부회장까지 되어서 내 앞에 서있었다.

와... 축하한다...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민석이도 눈물을 흘렸다.


'아...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그때, 그날의 그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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