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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Mar 09. 2022

#5 학부모님과의 통화

(이전화)


학급경영을 할 때, 나는 학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는 편이다. 아이 부모님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상담주간이나 저녁·주말 시간 따지지 않고 부모님과 상담을 진행한다. 아이가 바뀌기 위해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학부모님과의 통화는 부담스럽다. 그동안 수백번, 수천번의 상담을 해왔지만 아직도 상담을 하기 전 여러 가지 걱정을 한다. 혹시나 나의 좋은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으실까,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며 화를 내지는 않으실까, 몇몇 동료 교사들처럼 학부모님께 폭언을 듣지는 않을까.


더군다나 민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주먹이라고 하셨으니, 더욱 통화가 꺼려졌다. 혹여나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아닐까, 네가 뭔데 내 자식 교육에 간섭이냐 소리를 들을까 겁났다.


민수에게는 당장 아빠에게 연락을 할 것처럼 얘기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걱정 탓에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에 민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기로 결정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문자를 보냈다.


5분 뒤,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민수 아버지였다.


"민수 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민수 작년 6학년 때 담임선생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민수랑 얼마 전에 만났거든요. 초등학생 때에 비해서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더라고요. 사고도 많이 쳤더라고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 때문에 학교폭력위원회, 선도위원회도 열리고, 얼마 전에는 5일 등교 정지도 받고······. 이 부분에 대해서 민수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평소의 교육관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민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는 제 자식이 직접 몸으로 깨우치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민수랑 상의해서 8시까지 집에 들어오기로 약속했는데, 며칠 약속을 지키다 어느 날 민수가 8시 넘어서 들어왔습니다. '거봐라, 너도 모르게 늦게 들어오고 싶잖아. 약속 어겼지? 7시까지 들어와.' 했더니, 그다음부터는 7시 전에는 무조건 들어옵니다. 그때 몸으로 직접 깨달은 거죠. 아빠랑 약속은 꼭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몸으로 직접 깨우치게 한다.'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지금까지 민수 아버지가 말씀하신 부분은 딱히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민수 아버지는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 것이지 않습니까? 저는 애가 하고 싶은 걸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아이는 이제 막 경험을 하는 중인데, 그때 부모의 방식을 주입시키면 그건 부모의 인생이죠. 그러면 아이의 인생이 아닌 겁니다. 저는 제 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민수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도 존중해줄 겁니다."


"음······. 민수 아버지. 현재 민수가 일진 무리에 속한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이제 좀 큰 사람이 되려고 남자가 되려고 그런 거죠."


남자가 되려고, 큰 사람이 되려고 일진이 되었다고? 일진이 된 걸 옹호하시는 건가? 여기서부터 민수 아버지와 나의 의견은 갈라졌다.


"(깜짝 놀랐지만 덤덤한 척) 음······. 저는 좀 우려가 되는 게, 나중에 민수가 일진을 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나오고 싶을 때, 못 나갈 수도 있다는 게 걱정이네요. 중학교 선생님 말씀 들어보면, 지금 민수가 속해있는 일진 커뮤니티가 중, 고, 심지어는 대학생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해요. 대학생이 된 예전 일진들이 중학생들 불러서 자취방 청소시키고, 술·담배도 하고. 무리에서 나가고 싶다고 하면, 못 나가게 협박하고 라이터불로 몸을 지지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만약에 그런 놈들 있으면, 제가 다 때려 부술 겁니다. 저 아직 그런 힘 있습니다. 제가 살던 지역에서 저 모를 사람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저 유명했습니다. 만약 걔들이 민수한테 그런 짓하면, 다 때려 부숴야죠. 민수 거기서 빼낼 자신 있습니다."


"아, 네······."


결국에는 민수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일진놀이를 계속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말씀이셨다. 어떻게 하면 민수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 민수가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녀서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뚱뚱해서 돼지라고 놀림도 받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왕따도 당했습니다."


"(황당) 왕따요? 저도 민수랑 같은 반은 아니어도 그때 4학년 담임이었는데, 민수 왕따는 아니었어요. 무리에서 리더만 아니었을 뿐이지, 왕따는 전혀 아니었어요."


"그 뭐, 아무튼 시다바리 식으로 애를 대했습니다. 태주 생일날에 애들이 선물 별로라고 해서 울면서 집에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화가 나서 다 엎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애가 좀 강해져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6학년 때, 선배들을 따라다닌 겁니다. 스스로 커지려고. 이제는 태주? 이런 애들 민수한테 말도 잘 못 겁니다. 예전만큼 함부로 못 대합니다. 예전에는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민수가 더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음······. 친구끼리 상하관계는 좀······."


(중략)



"얼마 전에 민수가 출석 5일 정지를 먹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심하고 바로 엎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지난 8월부터 있었던 일을 11월 선도위원회에서 죄를 다 모아놓고 한 번에 때려버리는 게 말이 됩니까? 8, 9월에도 선도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렇게 하면 민수 네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전 공지도 전혀 없었습니다. 담임 선생님한테는 선도위원회만 한다는 연락만 받고요. 위원회 당일에도 저한테 용지 하나 안 주고, '이런 잘못했으니깐 어떻게 생각하세요?' 취조하듯이 말하고."


민수 아버지의 말씀 속에서 그날의 분노가 느껴졌다.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갑질이라 생각해서 교육청에 적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민수가 하지 말라고 저를 말렸습니다. '선생님들이 이제 너를 색안경을 끼고 볼 건데 괜찮겠냐?' 했더니 민수가 어차피 예전에도 그랬다고 괜찮다고 그랬습니다. 반에서 10명이 자면 민수만 깨워서 혼낸다고 하더라고요. 타게팅하는 것처럼."


뭔가 이상했다.

"그럼 그전에 사고 쳤던 것들은 아예 전달 못 받으신 건가요?"


"전달은 받았습니다. 그전에 사고 친 걸로 선도위원회는 계속 갔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른 겁니다. 선도위원회 열린 일을 계속 플러스해서 출석 5일 정지를 때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선도 위원회라는 게 징계 위원회도 아니고 폭력위원회도 아니고, 말 그대로 선도하는 입장에서 주의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역할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중징계를 때리는 게? 민수는 저한테 선도위원회가 이렇게 큰 건지 몰랐다고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줬다고 했습니다."


민수 아버지는 한참 동안 불만을 토로하셨다.


"음······. 그럼 일단은 민수가 그동안 여러 사고를 친 건 알고 계셨던 거죠? 선도위원회도 여러 번 열렸고, 매 번 민수가 잘못한 것들을 공지받으셨고."


"그렇습니다."


"1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 그 행동이 반복된다면 잘못된 행동에는 벌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


"민수랑, 민수 학교 선생님이랑, 민수 아버지 의견을 다 들어본 입장으로서 말씀드릴게요. 솔직히 세 쪽 다 입장이 다 이해가 가요. 민수 아버지 말씀도 충분히. 근데 제가 봤을 땐, 민수가 선생님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만하게 행동을 했어요. 학기초부터 소화기 터트리고 다니고, 선생님 폭행하려고 하고, 친구 괴롭히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저는 너무 안타까워요. 분명 초등학생 때, 수업도 잘 따라오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냈던 아이가 이렇게 바뀌어버린 게. 민수 아버지께서는 민수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니깐 괜찮다고 하시지만, 굳이 이런 경험을 안 하고도 잘 지내는 학생들 많잖아요?"


"사실 다른데 전학을 보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근데 또 이사를 가면, 애가 힘들지 않습니까. 다시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또 어차피 이제는 SNS가 발달해서 관계도 계속 이어지고. 스스로 벗어나려고 해야지, 부모가 바꾸려 해도 잘 안 됩니다.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후회가 돼요. 작년에 민수한테 강력하게 일진형들이랑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쫓아다니면서 말렸으면, 중학교 올라가서 공부도 여전히 잘하고 있을 거고, 애가 워낙 재미있고 괜찮으니깐 친구들이랑도 상하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로 잘 지내고 있을 건데······. 친한 친구가 두세명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중학교 선생님들이 민수를 원래부터 문제아였다고 알고 계신 것도 너무 속상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욕하고 친구 때리고 한다는 얘기를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들으면, 깜짝 놀랄걸요?"


민수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내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민수가 얼마 전에 얘기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그냥 어쩌다 보니깐 이 지경까지 왔다고.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데, 민수도 분명 알고 있어요. 지금 상황이 잘못됐다는 거를. 근데 벗어날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저랑 같이 공부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선생님,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20분 넘는 통화 끝에 민수 아버지께서 그토록 바라던 말씀을 해주셨다.


"저는 아버님 생각에 민수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시면 지금처럼 그냥 놔두지 마시고 지금보다 좀 더 관여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리고 민수한테 자율적으로 선택하라고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선택권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민수가 아직 중1 밖에 안 되었으니 세상 경험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지금 민수가 아는 거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그동안 해오던 것들밖에 없습니다. 그냥 해오던 대로,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는 거죠. 아버님은 이걸 자유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봤을 때는 방종이에요. 일진의 길, 군인의 길 말고도 다른 여러 길들이 있다는 걸 아버님께서 민수에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러 길들 중에서 민수가 선택하게끔."


"······."


"그리고 저는 민수가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병행했으면 좋겠어요. 민수는 머리가 좋아서 학교 수업 시간에 자지만 않아도 잘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수업시간에 안 잤으면 좋겠습니다. 공부, 운동 두 마리 토끼다 잡았으면 해요. 민수 아버님께서 말씀 몇 마디만 잘해주셔도 민수의 행동이 변할 거예요. 민수가 아버지를 엄청 존경하더라고요."   


"(웃음) 아, 그렇습니까?"


"그때 저랑 상담하고 민수가 수업시간에 안 자려고 노력하고 수업시간에 깨워도 화내지 않고 수업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버님께서 계속 민수가 바른 길로 가게끔 조언해주시고, 민수가 스스로 잘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환경 설정을 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민수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혹시나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민수 아버지에게 더 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았지만, 더 이상 얘기하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여기서 대화를 끝냈다. 아까 민수 아버지가 '더 크려고 일진형들이랑 만나고 일진이 되었다. 친구들이 말도 제대로 못 걸 정도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 이상 말씀드리면 선을 넘는 행동이 될 거 같았다. 민수 아버지의 이런 생각들은 평생에 걸쳐 형성돼 온 생각일 것이다. 그걸 바꾸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민수 아버지와의 통화로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마음이 찝찝해졌다.


뭔가 행동을 취하고 싶었으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나의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겠지.


설사 아무 변화가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해볼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영 모양새가 이상했다.


그러나 2주일 뒤, 우연한 계기로 민수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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