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민수가 매 번 온라인 수업에 늦게 들어와서, 아침에 민수를 깨우는 문제로 민수 어머니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민수 어머니는 교육관 차이로 민수 아버지와 자주 부부싸움이 있다고 하셨고, 민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민수 어머니가 단지 책임회피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아침에 민수를 깨우는 것. 그것조차 힘들어서 아버지와 통화를 따로 하라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윗글을 썼을 때, 선생님이 왜 아이 문제를 어머니에게만 지적하는지에 대한 댓글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학기초에 학부모님 두 분의 번호 중에서 연락할 대표번호를 학부모님이 직접 기초조사서에 적어서 보내주신다. 반 학생이 27명인데, 부모님 54분 모두와 통화하기에는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이때 대표번호가 어머니인 경우도, 아버지인 경우도 있다. 민수 집에서는 어머니 번호를 대표번호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민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시길래, 민수 학교생활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으시는 걸까?'
'민수 아버지의 교육관은 어떨까?'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선도위원회 열렸을 때 아빠는 뭐라셔? 안 혼내셔?"
"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아빠는 어렸을 때, 저보다 훨씬 더 심하셨다고 해요. 매일 싸움하고, 사고 치고. 전국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데요. 그 지역에서 아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러다 나중에 뉘우치고 군대에 들어가셔서 지금은 꽤 계급이 높아요. 공부 못하고 사고 쳐도 나중에 군인 하면 되니깐 괜찮다고 하셨어요."
"······."
민수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 전국구로 유명한 주먹이셨다고 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군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꽤 높은 계급이시다.
민수의 말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존경심이 절로 묻어났다. 예전부터 있었던 민수의 일진에 대한 동경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아빠도 그랬으니깐 나도 그래도 된다는 마음, 존경하는 아빠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보였다.
"흠······. 아빠랑도 한 번 통화해봐야겠네······. 아, 맞다. 지능검사 결과는 어떻게 된 거야? 경계성 지능장애라고 하던데?"
"아, 그거요? 저도 충격 먹었어요. 진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거의 지적 장애 수준이라고 해서······. 근데 저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나······."
"아니, 너 공부 원래 잘했잖아.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수학 단원평가는 70~90점은 받고. 왜 이렇게 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수업시간에 계속 자서 그런가. 머리를 안 써서 그런가."
"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진짜 바보, 멍청이 되는 거 아니야? 수업시간에도 자지 말고 좀 집중하고 해 봐. 너 머리 좋으니깐 수업만 들어도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거야. 아참, 지능검사에서 머리 안 좋다고 나왔지······."
"중학교 수업 재미없어요. 그리고 수업 방해된다고 선생님들은 저보고 그냥 자라고만해요. 그 의찬이 배우는 것처럼 저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의찬이랑 너는 경우가 달라. 그리고 선생님 내년에 다른 학교로 옮겨. 학교 선생님들한테 따로 부탁해보는 건 어때?"
"선생님들이 저를 안 좋게 생각해서, 아마 거절하실걸요? 조금만 잘못해도 엄청 혼내고. 같이 잘못해도 저만 혼내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차별이 엄청 심해요."
옆에 가만히 듣고 있던 지한이가 거들었다.
"맞아. 저한테 나쁜 학생이라고 낙인을 찍는 거 같아요. 저번에는 오랜만에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냥 잠이나 자라고 하고, 저한테만 화내고. 진짜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계속 뭐라 해요. 그래서 괜히 더 사고 치고 싶어지기도 해요."
이 아이들의 말만 들으면, 마치 중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어서 아이들이 엇나간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만 믿으면 곤란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아이들은 본인에게 유리한 얘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 다른 상황과 맥락이 있을 터였다.
"진짜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너희들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 선생님이 야단을 친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얘기해봐."
"잘못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민수 너 학기초에 소화기 터트리고 다녔다며? 그건 잘못 아닌가? 네가 선생님이라면 너를 좋게 봐줄까? 그거 말고도 사건, 사고들이 엄청 많았던 거 같은데, 그게 선생님이 낙인을 찍은 탓이라고?"
"아니요······. 그건 아니죠. 그래도······."
"선생님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을 해보기는 했어? 너희가 말한 것 중에 그런 노력은 하나도 없었던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 그래도 선생님이 계속 그러니깐······."
"선생님이 색안경을 끼고 봐서 사고가 더 치고 싶다고? 지금 어디다 핑계를 대는 거야? 너희 행동에는 너네가 책임을 져야지. 왜 계속 선생님 핑계를 대고 있어?"
"죄송합니다······."
"진짜 너희들이 바뀌고 싶다면, 다음 주에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말씀드려. 바뀌고 싶다고. 공부도 다시 하고 싶다고. 그럼 분명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야. 세상 어느 선생님이 변화하고 싶다는 제자를 안 도와주겠니?"
"네······."
한참 동안 잔소리를 했다. '수업시간에 졸지 말고, 깨어있어라.' '친구 괴롭히지 마라.' '일진들이랑 어울려 다니지 마라.'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선생님이 중학교로 직접 찾아간다.' '남 핑계 대지 말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져라.'
밤 9시 40분.
아이들에게 고기, 잔소리를 배불리 먹인 다음, 복싱 체육관에 내려다 주었다. 좀 있으면 대회가 있어서 연습하다 체육관에서 잔다고 했다.
아이들과 헤어진 뒤에도 마음이 찝찝했다. 일단 아이를 만나고 나면, 복잡한 실타래가 풀릴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해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민수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거대한 파도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민수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민수 아버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