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민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해볼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영 모양새가 이상했다.
그러나 2주일 뒤, 우연한 계기로 민수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교육청 사업 홍보 강사로 여러 학교들에 강의를 다니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민수의 중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민수네 중학교 강의 시간이었다. 학교급이 다른 중학교 선생님이 50명이나 되어서 약간 부담스러운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열심히 참여해주신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본 강의가 끝나고 QnA 시간이 다가왔다.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한 학생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관계에 대한 얘기도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었다. 우리 학교 남학생의 30~40% 이상이 이 학교로 진학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저희 초등학교에서 진학 온 아이들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제가 이 아이들을 잘 케어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에이, 선생님 학교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그래, 그나마 그 학교에서 온 애들이 제일 착해요."
"특히 지금 중1 아이들은 제가 초등학교 4,5,6학년 계속 달고 3년 동안 함께 했던 아이들이거든요. 혹시나 궁금하신 점이나 도움 필요하신 점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여러 선생님께서 의견을 주셨다. QnA라기보다는 토의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소통의 부재를 제일 큰 아쉬움으로 꼽으셨다. 이 아이가 초등학생 때 어떤 아이였는지, 반 편성을 할 때 어떤 아이들을 묶으면 안 되는지 알고 싶은데 초·중학교 간 소통 시스템이 잘 구축이 되어 있지 않으니, 알 방도가 없다고 하셨다. 학생부를 봐도 아이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죄다 좋은 말만 적혀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들의 민원 탓에, 아이들의 학생부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언어나 사실들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갑자기 얼마 전의 의찬(가명)이 담임선생님과의 통화가 떠올랐다. 선생님께서는 의찬이가 초등학생 때 도움반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하셨다. 학생부에는 그런 기록이 없었다고 하셨다.
선생님들께서는 아예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아이들을 새로 파악을 해야 하니, 힘들다고 하셨다. 특히나 중1의 경우에는 성적만으로 반편성을 했다가, 안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는 아이들끼리 모여 반이 엉망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하셨다.
혹시나 우리 학교 출신의 아이들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씀드리며 강의를 끝마쳤다.
강의가 끝나고 20대 중후반의 앳되어 보이는 여선생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민수 담임 선생님인데, 혹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민수 담임 선생님께서는 민수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한참 동안 말씀하셨다. 학기초에 소화기를 터트린 일, 여학교에 침입한 일, 담배 사건 연루, 학교폭력, 급식실에서 선생님한테 폭력을 휘두르려고 한 일, 최근 선도위원회에서 5일 등교 정지 처분받은 일까지······. 대부분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차분하게 경청했다.
사건들을 말씀하시면서 중간중간 떨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일어날까 말까한 학교폭력위원회, 선도위원회를 거의 매 달 겪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게다가 반에는 민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 초등은 담임 선생님과 하루 종일 같이 수업을 하지만, 과목별로 선생님이 다른 중·고등은 그렇지 않다. 담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런 와중에도 선생님은 민수를 이해하려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노력과는 별개로 민수는 계속 사고를 치고 다녔고, 이를 참지 못한 선생님이 몇 번 민수에게 화를 냈다고 하셨다. 그 뒤로 민수와 선생님의 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지금은 민수가 선생님과의 대화를 아예 거부할 만큼 관계가 좋지 않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민수를 대해야 할까요?"
깜짝 놀랐다. 사실 선생님이 선생님에게, 그것도 학교급도 다른, 심지어 경력도 비슷한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선생님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 내어 말씀하시는 것임이 분명했다.
선생님께서 용기를 내어 조언을 구하셨지만,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할 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뭐라고 중학교 선생님에게 조언을 하겠는가. 그리고 옆에는 20년 차 정도 되어 보이는 수학 선생님도 계셨다. 대선배 교사 듣는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것도 뭔가 불편했다.
먼저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선생님,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민수 이놈! 선생님 말 좀 잘 듣지!"
직접적인 조언을 하는 대신, 그동안 민수와의 스토리를 들려드렸다. 민수가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왔는지. 학년 골든벨에서 2등 했다고 분해서 운 얘기, 수학 단원평가 1개 틀렸다고 아쉬워했던 적도 있었단 얘기, 초등학교 때는 단 한 번도 폭력을 휘두르지 않은 얘기 등등······.
이야기를 듣는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본인으로 인해 민수가 잘못되지는 않았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시는 듯했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무너진 생활 패턴, 일진에 대한 동경, 일진 형들과 어울리다가 걸린 얘기 등등······.
옆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수학 선생님께서 갑자기 말씀하셨다.
"거 봐.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던 거네. 어쩐지. 갑자기 중학교 올라와서 변한 건 아니네요. 맞죠?"
수학 선생님의 말씀에서 약간의 책임회피성이 느껴지긴 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맞아요.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런 낌새가 보였어요. 근데 제가 그걸 해결하지 못해서······."
일진을 동경하는 민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 당시 했던 노력들을 말씀드렸다. 여러 차례의 학생·학부모 상담, 생활 패턴이 무너질까 걱정되어 거의 매일 전화, 온라인 학습 시절 따로 학교에 불러 밥을 사주면서 민수와 약속을 한 이야기까지.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민수는 결국 일진들과 어울렸고 중학교의 사고뭉치가 되었다. 그때 느낀 나의 감정들(죄책감, 스스로에 화남, 아쉬움)도 말씀드렸다.
얼마 전 민수 아버지와 통화한 내용도 얘기했다. 잘못된 것이라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한다는 민수 아버지의 확고한 교육방식, 아버지의 어린 시절(일진)을 동경하는 민수, 일진이 된 민수를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민수 아버지와의 통화로 교사 혼자 힘으로 아이를 바꾼다는 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이번에도 새삼 느꼈어요. 특히나 민수 아버지와 같이 교육방식이 확고한 경우엔 더더욱. 너무 선생님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물론 선생님께서 잘못하신 부분도 있겠지만, 오직 선생님 때문에 민수가 이렇게 된 건 아니에요."
이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 또한 죄책감으로 너무 힘들었다. 나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아 힘들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학기가 1달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보였다. 그래도 선생님을 위해서, 앞으로 있을 제2의 민수를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까 말씀하실 때, 민수가 잘못을 하면 부모님께 거의 연락을 안 하셨다고 했잖아요."
"아, 그건 민수가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실 오늘도 화난다고 수업 중간에 가방 메고 교실에서 나갔다가 한참 뒤에 돌아왔거든요. 부모님께 말한다고 하니, 앞으로 잘할 거니깐 제발 부모님께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해서······."
"사실 한 두 번이면 선생님이 그렇게 봐주실 수 있지만, 지금 민수는 상습적이잖아요. 아마 민수는 '어차피 내가 잘못을 해도 우리 반 선생님은 항상 봐주시니깐.'이라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 매 번 말만 바뀌겠다고 하고 행동은 안 바뀌잖아요. 그리고 아이가 잘못을 했으면,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맞아요. 그래야 부모님도 그 심각성을 아시죠. 민수 아버지랑 통화는 해보셨어요?"
"그게······. 문자는 보냈는데, 통화는 거의······. 좀 무섭기도 하고······."
"음······. 통화는 안 하시더라도 민수가 오늘 학교에서 이러이러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고 문자는 보내셨어야 해요. 그래야 민수 부모님도 아이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지도를 하죠. 민수 아버지가 반복된 잘못에 있어서는 엄한 편이셔서, 민수도 좀 더 행동을 조심하게 될 거고요."
"아, 네······."
시계를 보니, 선생님과 대화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네요. 긴 시간 동안 계속 하소연만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해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혹시 다음에 또 민수가 사고를 치거나 하면 선생님 얘기 꺼내도 될까요? 워낙 애가 선생님을 좋아하니깐 선생님 얘기를 꺼내면 좀 더 말을 잘 들을 거 같아서······."
"네,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돼요. 혹시 민수한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오늘 민수랑 같이 3명이서 대화를 나눴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다음에 혹시 기회 있으면 불러주세요. (웃음)"
그렇게 민수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1달 뒤, 민수네 중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의찬(가명)이 담임 선생님의 연락이었다. 올해 입학하는 중1 아이들 반 편성을 하는데, 이번에는 이전 6학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반 편성을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번에 졸업한 아이들은 잘 모르기에, 6학년 부장님의 연락처를 알려드렸다.
6학년 부장님께서는 교직 인생 15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신기하다고 하셨다. 나도 신기했다. 초등학교 선생님과 중학교 선생님 간의 소통이라니!
'혹시 한 달 전에, 강의 때 나눈 대화 때문인가?'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의 작은 행동이 조그마한 변화의 불씨를 일으켰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뿌듯했다.
개학 일주일 전, 예전 6학년 학급 밴드에 게시물이 올라온 걸 발견했다. 민수였다. 졸업한 지 1년이 지나도, 예전이 그리운지 가끔 게시물을 하나씩 올린다. 곧바로 민수에게 연락했다.
너무 큰 기대는 부담스럽다는 민수. 하지만 난 그런 민수에게 계속 큰 기대를 걸어 보려고 한다. 진심으로 민수가 올바르게 사리 판단을 잘하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민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소통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