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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16. 2022

#5 중학교 담임선생님과의 통화

(이전화)


다음날 아침, 의찬이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바로 문자를 보냈다.


당일 저녁 바로 통화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저녁 7시. 전화 통화 10분 전.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의찬이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미 졸업한 중학교 아이에게까지 신경 쓰는 것을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을까? 내 전화를 반기실까? 어떤 교육관과 철학을 가지고 계실까? 평소에 의찬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7시 10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의찬이 5학년 때 담임선생님 000이라고 합니다."


"(어색)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제가 아침부터 연락드려서 정말 당혹스러우셨죠? (웃음)"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반가웠어요. 저도 의찬이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문자를 주셔서 진짜 반가웠어요. 의찬이한테 물어보니깐 되게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헛... 다행입니다. 혹시나 불편해하실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음... 사실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중략)"


2년 반 전부터 현재까지의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학습동기가 전혀 없던 초등학교 5학년 도움반 시절 이야기, 최근 바뀌기로 결심한 의찬이의 다짐, 현재 학습 수준, 엉망인 생활 습관 등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내 얘기를 들은 의찬이 담임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네? 의찬이가 도움반이었다고요? 진짜 전혀 몰랐어요. 제가 국어 담당인데, 국어 수업하는 거 보면 진짜 잘 따라 하거든요. 얼마 전에 쪽지 시험도 반 평균 이상이었고, 심지어는 저랑 독서 토론 동아리도 같이하고 있어요. 전혀 도움반처럼 안 보였는데 충격이네요...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깐 그동안 의찬이가 진짜 많이 바뀐 거네요."


"그래서 제가 오늘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첫 번째는 의찬이가 평소에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교우관계나 수업 태도 등등... 의찬이의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니깐. 그리고 두 번째는 의찬이가 지금 양치질을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안 했을 정도로 생활 습관이 엉망인데, 한 번씩 기본적인 생활습관만 체크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일단 의찬이는 학교생활을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어요. 아, 1학기 때 한 번 싸운 적은 있어요. 옆반 친구 한 명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놀려서... 그 친구가 바로 사과해서 두 친구 사이의 갈등은 해결이 됐는데 저는 의찬이 위생상태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머리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안 감는 거 같고... 제가 하도 잔소리를 하니깐 그래도 요새는 좀 씻고 오는 거 같아요. 그때 싸운 거 빼고는 한 번도 친구 사이에 문제없었고, 반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요. 애들도 다 착하고."


"휴... 다행이네요... 저는 혹시나 애들이 의찬이 옷에서 냄새난다고 공부 못 한다고 괴롭히지는 않을까 엄청 걱정했거든요. 흠... 위생문제는 의찬이랑 얘기해보고 의찬이 할머니께도 말씀드려봐야겠네요."


"학습은 국어 시간에는 정말 수업을 열심히 잘 들어요. 근데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다르게 과목들마다 선생님들이 따로 들어오시잖아요. 그래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의찬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듣고, 싫어하는 과목은 아예 안 듣거나 엎드려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수학 같은 경우는. 수학 선생님 말씀으로는 의찬이가 수학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사실 의찬이 수학 실력이 지금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수준이거든요. 의찬이에게는 중1 수학이 거의 외계어 수준이었을 거 같네요... 수학은 내년 2월까지 중1 수준까지 한 번 만들어보려고요. 제가 이틀 같이 공부해보니깐 생각보다 잘 따라 하더라고요. 계산할 때 센스도 있고, 한 번 가르쳐주면 잘 기억하고. 머리가 안 좋아서 수학을 못한 게 아니라, 그동안 안 해서 못한 거 같아요."


의찬이 담임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선생님, 그럼 저는 의찬이한테 어떤 부분을 신경 써주면 될까요? 음... 선생님이 수학을 집중적으로 봐주신다고 했으니깐 저는 영어를 봐주는 건 어떨까요? 사실 지금 반에 의찬이처럼 학습이 안 되는 친구들이 많아서 방과후에 그룹으로 영어를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오... 좋죠!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반에 학습 부진인 아이들이 많거든요. 중학생인데 한글을 모르는 학생도 있고... 의찬이보다 학습이 안 되는 아이들도 좀 있어요. 이 아이들을 하나하나 케어하려다 보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거 같아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으니, 그동안 의찬이한테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거든요... 분명 의찬이는 누군가 제대로 코칭만 해줄 수 있으면 정말 잘할 수 있는 앤데... 의찬이만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안타까웠는데, 마침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정말 선생님, 대단하세요. 오늘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면서 계속 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선생님의 입장을 십분 이해했다. 의찬이의 학교는 학습 부진이 많기로 유명했다. 바로 옆 학교가 공부를 잘하기로 유명해서, 우리 학교의 모범생들도 대부분 옆 학교에 지원을 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와는 달리 과목별로 선생님이 바뀌는 중학교 시스템에서는 선생님이 상대적으로 반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 수업이 다 끝나고 퇴근 시간 전까지 많아봤자 1~2시간 정도인데, 아이들을 케어하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거 같았다.



의찬이 담임 선생님과 의논 결과, 일단 의찬이가 방학을 하는 1월 중순까지 최선을 다해보는 걸로 결정했다. 월, 화, 목, 금은 내가 수학을 봐주기로 했고, 수요일은 담임 선생님께서 영어를 봐주시기로 했다. 수학은 초6 과정까지 다 떼는 것을 목표로, 영어는 기본 파닉스와 단어 외우기 위주로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학습적인 면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측면도 각자의 영역에서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의찬이 담임 선생님께서는 의찬이가 잘 씻고 오는지, 평소 수업 태도는 괜찮은지 계속 챙겨봐 주시기로 했고, 난 의찬이 할머니와 생활·학습 측면에서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의찬이를 변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두 시간에 걸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의찬이가 다닐 학원도 구했고, 담임 선생님이라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조력자도 생겼고 무엇보다 의찬이 스스로가 바뀌고자 하는 동기가 충만해 보였다. 정말 이대로만 가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의찬이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 같았다.


내년 초까지 수학, 영어 중1 수준 도달

내년까지 반에서 10등 안 진입

00 고등학교 입학

전교 순위권

In 서울 대학

교사임용합격


설레는 마음으로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도움반 출신 아이가 의지로 환경을 극복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인생 역전의 스토리를 그렸다.


곧바로 있을 위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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