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Aug 27. 2022

A가 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성공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

매년 1~2번씩 중학교 친구 6명(필자 포함)이 모여 여행을 다닌다. 이번 여름휴가 때도 어김없이 다 같이 모였다.


6명이서 모여 다닌다고 해서 6명이 전부 다 친한 건 아니다. 사실 A와는 오히려 어색한 사이였다. 서로 친하진 않지만 공통적으로 친한 친구가 있어 어쩌다 보니 한 무리에 속해 경우가 있지 않은가? A와 내가 딱 그런 경우였다.


A와는 중학교 동창이긴 하지만 같은 반을 한 적이 없고, 고등학교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기에 모임 말고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 하는 것처럼 짓궂은 장난도 치고 친근감의 욕도 하지만 그 어색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런 A와 어쩌다 단둘이 남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6명이서 카드 게임을 하다 언쟁이 벌어졌는데, A와 나는 끝이 없는 싸움에 지쳐 다른 방으로 피신해 온 상태였다.


각자 폰을 보며 어색하게 누워있다가 먼저 A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요새 일은 어때? 많이 바쁘지?"


"일? 많이 바쁘지... 어제도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고 발표하고 한다고 밤새고 여기 왔어."


항상 일이 바쁜 A였다. 회사일이 많다는 이유로 작년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기에 '모임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에둘러서 한 질문이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A가 이어서 대답했다.


"지금 이 시기가 나한테 정말 중요한 시기거든. 요새 진짜 내 인생을 걸고 죽기 살기로 일하고 있어. 저번 모임에도 안 오고 평소에 연락 잘 안 하는 건 너희들한테 미안해. 근데 집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서울대를 나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꽤 전도유망한 스타트기업의 이사로 승진한 A는 도대체 무슨 목표를 가졌길래,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걸까? 지금까지 A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을까?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일단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싶어. 너도 알잖아. 우리 집 찢어지게 가난했던 거. 사실 초중고 수학여행비도 못 내서 매 번 수학여행 신청도 안 했어. 물론 학교 선생님들께서 돈을 거둬서 도와주셨지만,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매일 라면만 끓여 먹고 돈이 없어서 주변 눈치만 보던 시절."


A는 어릴 적 얘기를 담담하게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 공부도 진짜 못했잖아. 중학교 1학년 수학 첫 시험 때 38점 나와서 얼마나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맞다. 내가 기억하는 A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A는 성적 순위권에 없었다.


"근데 그때 마리드(당시 사회 선생님, 머리가 카트라이더 마리드를 닮아서 생긴 별명)쌤이 한자공부를 추천해주시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거라도 하면서 공부에 재미를 느끼라고 추천해주신 거 같아. 근데 막상 한 급수씩 따면서 뭔가 성취감이 생기더라고.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지. 너 그거 알아? 나 마지막에 졸업할 때는 9등으로 졸업했어."


"사실 난 그 뒤의 네 선택이 놀라웠어. ○○고(공부 잘하는 일반고)가 아니라 △△고(공부 못하는 학교)로 갔잖아. 그 선택이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아."


"맞아. 그때 냉정하게 생각했을 해봤지. 만약 내가 ○○고로 간다면 어떻게 될지. 보나 마나 중간이나 밑에서 성적을 깔아줄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차라리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기로 했지. 거기다 △△고에서는 장학금도 준다고 했거든."


결국 A는 △△고로 입학했고 선생님들의 관심과 지원 속에 내신점수를 차곡차곡 잘 쌓아갔다. 그리고 A는 올 만점의 내신성적을 가지고 서울대 농경제학과에 지균(지역균형)을 썼고 붙게 된다.


"그때 일부러 농경제학과에 썼어. 내신이 좋아서 경영학과도 갈 수 있었는데 거긴 내 수준에서 비비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사실 내가 서울대에 적응할 수 있을 지도 긴가민가했어."


A의 말이 맞다. 사실 A는 내신만 좋을 뿐, 수능성적은 최저등급 턱걸이 수준이었다. 당시 나 또한 서울대에 가면 A가 적응하기가 힘들 거라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A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수님과 동기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가며 서울대에 적응을 잘했고 평균 이상의 학점으로 졸업했다.


"대학교 2~3학년 때쯤에 직감했어. 난 여기 있는 애들이랑 같이 경쟁하면 보나 마나 지겠구나.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 대신 새로운 분야에 창업을 하기로 했지. 당시에 스타트업 붐이 불었었거든. 물론 결과적으로는 당시 사업이 실패하긴 했지만, 그때 경험으로 지금 대표(대학동기)한테 스카우트된 거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잘한 건 선택과 집중이었던 거 같아."


"와... 선택과 집중이라... 내 생각에는 네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스스로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 메타인지 말이야. 자신이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아는 능력. 넌 네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못하는지 잘 알았고 덕분에 최선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진짜 멋있다. 친구야."


"분수에 맞는 선택을 한 거지. (웃음)"


Designed by Freepik


A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A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사실 난 그동안 A가 그저 운빨로 서울대에 간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A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A의 성취는 그저 운빨이 아닌 엄연한 실력이었다. 냉정하게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했고, 과감하게 선택하고 집중했다.


A가 말을 이었다.

"근데 난 교실남 너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정상에 있다가 밑으로 추락하면 멘탈이 나가서 망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 근데 너는 그걸 극복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잖아."


"뭐 지금이 행복하긴 하지. 중학교 때 공부 좀 잘한 거 가지고 뭘. 너와 달리 난 메타인지력이 낮았던 거지. 오만하기도 했고. 그래도 덕분에 돌고 돌아서 딱 나랑 맞는 천직을 찾았으니 해피엔딩 아니겠어? (웃음)"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대답했으나, 마음은 살짝 아팠다. 그렇다. 나도 한때는 정상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항상 전교 1등을 도맡아 했고, 지역 내에서도 수학영재로 유명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는 A가 포기했던 ○○고 교장 선생님이 잘해줄 테니 학교에 와달라고 스카웃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의 난 오만했고 메타인지가 너무나도 낮았다. 99% 이과 성향이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우겠다며 과고가 아닌 외고를 선택했고, 당시 예민해서 혼자가 아니면 잠도 잘 못 자면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며 기숙사 생활을 택했다. 무엇보다 외고에 가서도 내가 1등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결과적으로 내 영어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따라서 내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선생님의 관심 또한 받지 못했다. 여기서 난 그저 노래를 좀 하고 악기를 좀 잘 다루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대학 진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바람대로 교대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누가 봐도 내 적성은 초등교사에 찰떡궁합이었다. 하지만 난 자존심 문제 때문에 교대 들어가는 것이 죽어도 싫었고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Sky에 가는 걸 보니 배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었다는 기분 때문에 심지어는 교대 다니는 동안에 몇 번이나 자퇴를 할 생각도 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직업이 이렇게나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시 대화로 돌아가서)


"혹시 집안 일으키는 거 말고 다른 꿈 있어?"


"있지. 내가 그동안 도움받아왔던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베푸는 거. 어릴 적부터 학교의 도움을 엄청 받았거든. 대학도 고등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다니고.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꼭 기부하고 싶어. 그리고 친구 자녀의 든든한 빽이 되고 싶어. 서울대 애들 보면 다들 아빠 친구 빽이 있더라. 병원장, 대학총장, 국회위원 등 엄청나더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는 그게 제일 부러웠거든. 그래서 내 친구 자녀들한테 만큼은 내가 든든한 빽이 돼주려고."  


자신만의 꿈과 가치를 는 A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A는 아직 사회통념상 성공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애매한 단계다. 하지만 여태 해왔던 대로 자신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올바른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머지않아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살기 위해서 다시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