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여름, 딱 이맘때였다.
아침에 기숙사에서 자고 일어나니 이상하게 귀가 먹먹했다. 급식실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앞에 있는 친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귀를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 잠을 잘 못 잤나? 피곤해서 그런가?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주말 내도록 잠을 잤지만 내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제는 바늘로 내 귀를 콕콕 찌르는 느낌도 났다. 중간중간 이명도 들렸다.
귀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서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말소리 자체는 들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 뇌가 소리의 해석을 거부하는 듯했다.
며칠 뒤 모의고사를 봤다.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데 또 누군가가 내 귀를 막는 듯한 느낌이 또 났다. 순간 멘붕이 왔고 듣기 평가를 망쳤다. 외고생이 영어 듣기 평가 문제를 1문제 틀리는 것만으로도 엄청 부끄러워할 일인데, 나는 5문제나 틀렸다.
'내 귀가 고장 난 건 아니겠지? 내가 어떤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듣기 평가 때문에 수능 망치면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닐까?'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나겠다 싶어 즉시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 알렸다. 세 분 다 깜짝 놀라셨고 그날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셨다.
(병원에서)
"청력검사도 하고 귀 안쪽도 살펴봤는데 아무 이상 없는데요? 가끔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더라고요. 마음 편안히 가지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하지만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도 내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명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전보다 자주 찾아왔다. 도저히 공부만 하면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주변에 용하다는 병원들은 다 찾아갔다. 의사들의 진단은 제각각이었다.
"스트레스성입니다. 아마 입시 끝나면 괜찮아질 걸요?"
"제 생각엔 메니에르병인 거 같습니다."
"턱 쪽에 문제가 있으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거든요. 턱관절 치료를 해보시는 게..."
의사들이 진단하는 대로 치료를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몇 달을 병원을 다니며 허탕을 치면서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서서히 지쳐갔고, 특히 부모님은 나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너 공부하기 싫어서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이번에 성적 많이 떨어져서 그거 핑계 대려고. 의사들이 청력은 아무 이상 없다잖아? 지금 정말 중요한 시기니깐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제발 공부에 집중해라."
"아니, 진짜 아프다니깐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아픈 걸 어떻게 해요? 귀가 정말 안 들린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 또한 부모님과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아, 얼마 전에 △△이도 아프다고 선생님을 찾아왔거든. 병원에 갔는데 △△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 때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시험 끝나니깐 감쪽 같이 증상이 사라진 거 있지?"
"선생님, 저는 증상이 안 사라졌는데요? 지금 몇 달째 이 상태라고요."
"선생님 말은 네가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없는 병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거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입시에 집중해. 선생님 생각에는 수능 끝나면 감쪽같이 귀 증상이 사라질 거야."
의사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나름대로 인터넷을 뒤져가며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발살바법(입과 코를 막고 강하게 숨을 내쉬는 방법), 턱에 온찜질, 귀 근처 마사지 등 여러 가지 민간요법들을 시도해보았다. 혹시나 귀에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그 좋아하던 음악 듣는 것도 끊었다. 이어폰만 끼면 누군가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귀가 벌겋게 달아올라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정말 선생님과 몇몇 의사들의 말대로 정신적인 문제일까 싶어서 셀프 인지치료도 해보았다. 그동안에 아픈 기억들을 꺼내놓고 마주하며 부정적인 관념을 긍정적인 관념으로 바꾸는 작업들을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인지치료도 효과가 없다면 정말 근원적인 어떤 정신적 충격이 나한테 가해져서 내가 이런 증상을 갖게 된 걸까? 혹시 작년에 사귀던 여자애한테 차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맨날 불 켜놓고 자는 룸메이트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성적을 높이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걸까?'
당장 서울에 올라가서 서울대학병원이나 좀 유명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었으나 이미 거짓말 혹은 정신적 문제라고 단정 지어버린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을 설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참 수능에 집중해야 할 고3이 병원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오히려 나를 한심하게 보셨다.
"그거 하나 못 이겨내? 너는 멘탈이 약한 게 문제야. 중학교 때는 맨날 1등만 하더니 고등학교에 오니깐 너보다 잘하는 애들이 수두룩 하니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귀 핑계 대지 말고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공부나 해!"
어른들 말대로 일단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귀에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도, 잘 들리지 않더라도 대충 들리는 몇몇 단어를 조합하면 듣기 평가는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증상이 더 심해져 어느 순간부터는 머리도 어지러웠으나 정신력으로 극복하면 될 것 같았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은 정말 중요한 시기이니, 이번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참아냈다.
몇 달 뒤 수능을 봤고, 보기 좋게 망쳤다. 언어영역 듣기 평가 때부터 멘붕이었다. 특히 듣기 평가 마지막 문제는 무슨 말인지 거의 안 들려서 찍었다. 인생이 걸려있다는 생각에 다시 멘탈을 잡고 시험에 집중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얼마 뒤 결과가 나왔다. 언어 3등급, 나머지 과목 전부 1등급...
내가 원하는 대학 중에는 언어 3등급짜리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대학 논술 시험조차 자격요건이 언수외 최저등급 2등급 이상이었다.
고등학교 3년 간 헛수고를 했고 이제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나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이 SKY 대학에 합격하는 걸 보고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일반고나 과고로 가지 왜 하필 적성에 맞지도 않는 외고를 선택했을까? 하며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기에 재수를 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아들 기죽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서울에 강남대성이라는 학원을 등록해주셨다. 1년 동안 공덕역 근처에 사는 이모집에서 머물면서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귀의 증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의사들이라면 내 귀의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충분히 치료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재수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병원을 찾아다녔다. 귀 쪽으로 용하다고 하는 의사들은 거의 만나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아마 어릴 적부터 이어폰 사용을 많이 해서 귀에 무리를 줘서 그런 거 같아요. 현재로서는 치료가 힘듭니다."
재수친구의 추천으로 200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어서 1달 넘게 저음을 인지하는 청각신경 복원치료도 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치료 마지막 날 의사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차라리 정신과 쪽에 가보시는 쪽이..."
뇌에 이상이 있나 싶어 MRI도 찍어봤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으나,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오만해서 혹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서 신이 나에게 벌을 주는 건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슨 안 좋은 일만 생기면 귀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것도 귀 때문'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것도 귀 때문'
'소심한 성격이 된 것도 친구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진 것도 귀 때문'
물론 귀 탓도 있었다. 잘 들리지 않는 것 때문에, 이물감 증상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조차 귀 탓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귀는 나에게 일종의 면제부였다.
귀 때문에 내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 생각하고 놀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주말에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 밤새 놀기도 하고 하루 종일 PC방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몇 달 뒤 수능을 쳤다. 내심 좋은 성적을 기대했으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년과 비슷하거나 작년보다 조금 잘 친 정도였다. 여전히 언어는 3등급이었다. 이번에도 답이 없었다. 그날 가채점한 점수를 보고 엄마와 함께 펑펑 울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난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으로 방에서 두문불출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순간 자살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귀 때문에 이번 생은 망했겠다, 부모님께 실망감만 안겨 드리는 나 같은 자식은 없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학원서를 쓰는 기간이 찾아왔고,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집을 방문하셨다. 우리 집안에 선생님 한 명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교대에 입학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부모님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했다.
죽기보다 싫었다. 선생님이 되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오히려 난 선생을 증오했다. 워낙 그동안 선생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선생님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또한 하향지원해서 교대를 가는 게 자존심 상했다. 다들 좋은 대학에 가서 '○○아, 겨우 교대 가려고 재수한 거냐?' 하며 나를 비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삼수를 하자니 또 그 고통스러운 1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다른 대학의 학과에 지원하자니,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차라리 학비가 싼 교대에 다니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면 혹시 귀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교대에 입학했다. 선생님이 되는 것에 흥미는 없었지만, 선생님은 내 최고의 적성이었다. 한 분야에서는 프로만큼 잘하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잘하는 나에게는 초등교사가 딱이었다. 나도 모르게 대학생활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아픈 귀였다. 대학 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더니, 이제는 귀 쪽에서 내려와서 턱관절까지 아팠다. 대학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나, 역시나 효과는 없었다.
정말로 심리적인 문제인가 싶어서 학교의 상담전문 교수님께 상담을 받기도 했다.
"○○아, 이 병은 그냥 네 친구라고 생각해 봐."
교수님의 말씀은 내가 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으나, 증상은 여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귀에 자극을 많이 가하지 않는 거였다. 이어폰 쓰지 않고, 전화통화 스피커로 하고 음악이 큰 곳에는 가지 않고, 술 많이 먹지 않고.
귀 때문에 내 신경은 항상 온통 곤두서 있었고, 그 때문에 당시 여자친구와도 많이 싸웠다.
실습을 나갈 때는 혹시나 내가 수업을 할 때, 애들이 질문이 들리지 않을까 봐 겁이 났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가 질문을 할 때, 다가가서 들었기에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4년 간의 대학생활 끝에 난 선생님이 되었고, 1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한 뒤에 군대에 가게 되었다. 좀 편하고 여유롭게 자기계발하고 싶어 공군을 지원했지만, 훈련소에서 교육을 하는 조교의 모습에 반해 조교 보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조교를 하면서 제일 걱정이 되었던 건 혹시나 TRS(무전기)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였다. 실제로 TRS 내용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고, 항상 볼륨을 최대한 해놓고 귀 가까이에 놓곤 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잘 못 들었습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28살이 되었다. 귀 증상은 여전했다. 9년이 넘도록 나름대로 귀를 치료해보려고 했지만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귀치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에 상담 교수님 말처럼 그냥 내 평생 친구라고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난 내 귀의 증상을 없애 버려야 할 무언이 아닌, 좀 더 올바른 생활을 하라는 내 몸의 주의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귀가 아프면 좀 더 잠을 잘 잘자거나 운동을 하거나 식단 조절을 하며 내 몸을 돌봤다.
증상은 여전했지만 대상에 대한 관념을 바꾸니 멘탈리티 측면에서 상당히 효과를 봤다. 전처럼 아팠지만, 더 이상 귀 하나에만 집착하지도 모든 걸 귀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도 귀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 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활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정말 뜻밖의 곳에서 귀 치료의 단서를 찾게 된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