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Aug 29. 2022

#2 다소 어이없는 결말

(이전화)


작년 9월 헬스 PT에 등록을 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고 싶은 목적에서보다는 운동 루틴을 만들어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자는 차원에서였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이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야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여러 건강서적들의 주장에 혹한 것도 있다. 기왕 배우는 김에 안 다치고 올바른 자세로 근력 운동을 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헬스 PT 첫날부터 귀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귀가 약간 먹먹해지는 정도였는데, 근력 운동을 하니 먹먹한 정도가 아니라 아팠다. 귀와 턱관절이 계속 신경 쓰여서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진지하게 등록했던 PT를 다시 환불받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일단 트레이너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음... 제 생각에는 등 쪽에 신경이 눌려서 그런 거 같은데... 회원님 보면 어깨가 살짝 올라와있고 좌우가 불균형하잖아요. 지속적인 근력운동으로 짧아진 근육들을 늘려주고 좌우 균형을 맞춰주면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끔 두통 때문에 찾아오시는 회원분들이 있는데 꽤 효과를 본 분들이 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그동안 내가 귀 때문에 얼마나 병원을 많이 다녔고 고통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냥 나를 PT에 붙잡아두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으로 일단은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트레이너가 추천하는 재활운동을 하고 중간중간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받았다. 몸이 풀려서 그런지 플라세보 효과인지 가끔씩 귀의 먹먹한 느낌이 사라진 거 같기도 했다.



몇 달 후, 귀의 증상이 90% 이상 사라졌다. 귀의 먹먹한 느낌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도 이명도 거의 사라졌다. 이게 말이 되나? 14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증상이 이렇게 간단하게 사라진다고? 기분은 좋았지만 뭔가 억울했다. 고작 이것 때문에 고쳐질 병이었으면 그동안 내가 날린 시간과 에너지는? 귀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14년이었는데!


트레이너 또한 놀란 눈치였다.

"헐... 사실 저도 혹시나 해서 그냥 던져본 말인데... 여러 의사들도 못 고친 병을 제가 고친 거네요? 의료계에 진출해야 하나요? (웃음)"


  


너무 허무하고 어이없는 결말이었기에 내 나름대로 현상황을 정리하고 이걸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첫째, 절대 희망을 잃지 말자. 전혀 해결하지 못할 거 같은 문제도 어딘가에 해결방법은 있다. 때로는 이번 경우처럼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둘째, 핑계 대지 말자. '이것 때문에 못한다. 저것 때문에 못한다.'라고 자기 합리화를 할 시간에 정말로 그런 지 냉정하게 판단해보자. 우리는 이 의지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바로 '안 하려는 의지' 말이다. 우리의 뇌는 피곤하고 하기 힘든 일에는 온갖 핑곗거리를 대면서 '안' 하려고 한다. 이때 질병 같은 경우는 좋은 면제부이자 핑곗거리이다.


셋째, 당장 해결하지 못한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게 다 내 인생의 일부,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의 고통은 상황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파생된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도가 달라진다.


14년 동안 다소 어이없는 이유로 고통을 받은 게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귀 아픔이 나에게 이득을 준 것도 많다. 귀 아픔 덕분에 교사라는 나의 천직을 찾을 수 있었고 교사가 된 덕분에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지금의 내가 있게 하려고 만든 큰 그림일까 싶기도 하다.


물론 똑같은 경험을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ㅎㅎ


요즘에도 가끔씩 귀가 아프다. 특히 배드민턴이배구 같은 편측 운동을 하면 증상이 올라온다. 그럴 때면 폼롤러로 몸을 풀어주거나 헬스장에서 양쪽 운동으로 근육 밸런스를 잡아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온데간데없이 증상이 사라진다.


귀도 나았겠다 이제는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안'했던 것들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멈췄던 음악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무엇보다 나와 주변을 돌보고 사랑하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1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