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Aug 30. 2022

과거 선생님들과 엄마에 대한 배신감

두 달 전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였다.


여러 대화를 나누다가 과거 중학교 1, 2학년 담임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중학교 2학년 반장선거 때 갑자기 그 선생님이 '너는 작년에도 반장을 했으니 이번에는 나오지 마라.'라고 했을 때, 저는 진짜 장난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진짜 00이 엄마한테서 돈을 받아서 그런 거였다니..."


"그때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했어. 00이 반장 무조건 시켜주는 걸로 하고 돈 받았다고."


"선생님이 저한테 진짜 반장선거 나오는 거냐고 그냥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던 게 생각나요. 그때 제가 눈치가 없어서 반장선거에 그냥 나간 게 신의 한 수. ㅋㅋ 어쩐지 00이가 담임 선생님한테 '이건 아니다.'라는 표정으로 항의하더라고요."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내가 여태 겪은 선생님 중 최악의 TOP2 선생님에 들 정도로 나쁜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음악을 사랑하는 멋진 국어 선생님으로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였으나, 수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항상 국어 수업은 반장인 나에게 맡기고 본인은 악기 연습하러 음악실에 가곤 했다. 제대로 수업을 들은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본인이 기분이 나쁠 때, 학생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손찌검을 하던 기억도 난다. '선생님 왜 때리는데요?'라는 친구의 말에 '이유 없으니깐 때린다.'라며 정색하며 뺨을 때리던 그때 그 시절의 선생님...


이 선생님은 TV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선생님이었으나, 그 이름값만큼 비리 교사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결국 선생님은 몇 년 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로 학교에서 잘리게 되었다.


"진짜 그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학부모들한테 돈을 요구하지?"


"그 당시에는 그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 중에서도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꽤 있었어."


"네? 정말이요? 제 담임 선생님들 중에서요?"


"네 담임했던 선생님들 중에서도 있었지."


설마? 설마? 아니겠지? 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선생님의 부탁을 들어줬어요?"


"어. 어쩔 수 없었어. 담임 선생님이 '00 어머니 교실에 ~가 부족하네요.' 이런 식으로 전화가 오는데 그럼 어떡해. 또 네가 반장이었기도 하고. 당시에는 다들 그런 분위기였어."


엄마의 말에 순간 배신감이 들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그런다고 그걸 그대로 해줘요? 그냥 무시하면 되지. 우리 집이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어. 반장 엄마면 당연히 그런 걸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니깐. 그래서 엄마가 너 전교회장은 못 나가게 한 거잖아."


맞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전교회장에 나가려는 나를 부모님은 한사코 말리셨다. 전교회장 나가면 이런저런 지출로 적어도 돈 천만원 이상은 깨진다고. 차라리 나가려면 고등학생 때 전교회장 나가라고.


"그럼 진짜 엄마가 뇌물 바쳤다는 게 사실이었네! 하... 그것 때문에 내가 학창 시절에 얼마나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교실남 엄마 담임한테 뇌물 바쳤어. 학교 끝나고 뭐 가지고 오는 거 봤어!'

'아~ 그래서 담임이 교실남 좋아하는 거네!'

'시험문제도 가르쳐주는 거 아니야?'


초중학생 때, 나를 싫어하던 친구들에게서 항상 나온 말이었다. 당시 정말 억울했기에 맞서 싸웠다.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말라고, 중학생 때는 면전에다 대고 저렇게 말하는 놈에게 죽빵을 날리기도 했다. 근데 그게 사실이었다니... 새삼 죽빵을 날린 그 친구에게 미안해지는...


"혹시 지금 제가 연락하고 있는 담임 선생님들 중에서도 그런 선생님 있었어요? 있으면 왜 그랬는지 지금 물어봐야겠어요."


"음... 아니, 없었어."


순식간에 가족 식사자리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엄마와 과거 담임 선생님들에게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가 삭히지가 않았다. 과거 친구들이 뭐라고 한 것들이 대부분 사실이었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방금까지 난 담임에게 뇌물을 준 친구를 까고 있었지 않은가? 그 친구와 내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사실 그때의 분노와 당시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은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그 당시에는 국가에서 지원이 지금보다 적어서 학습물품을 선생님과 학생이 자체적으로 다 구입했었잖아. 교실 비품들도 아마 선생님들 사비로 구입해야 했을 거고. 그런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아내의 말대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한몫을 했겠지만, 그래도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고대 유물이 되어버린 촌지가 있던 그 당시에도, 촌지를 안 주고 안 받은 학부모와 교사는 있었다.



교사 커뮤니티에 보면 20~30대 교사들이 쓴 글 중 가끔씩 이런 류의 글들이 올라온다.


똥은 50~60대 교사들이 다 싸놨는데, 그걸 20~40대 교사들이 다 치우고 있다.


촌지, 폭언, 구타, 방만 등 교사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인식은 50~60대 교사들이 만들어놨는데, 그들은 대부분 편안하게 은퇴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후폭풍을 20~40대 교사들이 맞고 있다는 내용이다. 너무 일반화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일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학부모님들의 학창생활은 내가 보낸 학창 시절과 시기가 비슷하기에, 교사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이나 인식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그렇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다.


가끔씩 친구들 중에서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촌지 요새도 있지? 받는 사람 있지?'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나도 그들과 똑같은 학창 시절을 겪은 한 사람이니깐.


우리 세대가 50~60대가 되었을 때는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서 그래도 그나마 지금보다는 인식이 좋아지지는 않을까? 훗날 어른이 된 아이가 과거의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실망하지 않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2 다소 어이없는 결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