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제 졸업까지 2달 정도밖에 안 남았네... 이제 학기 시작하는 느낌인데 벌써 졸업이라니... 아직 너희들끼리 안 친한 친구들도 많지? (한숨) 하... 밖에 나가서 피구도 하고, 경찰과 도둑 놀이도 하고 여러 체육 활동도 해야 친해지는데,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 놀지도 못 하고... 선생님이 미안하다..."
"아... 코로나 짜증 나!"
그때 한 아이가 제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마니또 활동하는 건 어때요? 그러면 애들이랑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은데..."
"오~~ 좋은 생각인데? 다른 친구들 생각은 어때? 찬성하는 사람 손!"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니또 활동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손을 안 든 친구들은 마니또가 무얼 뜻하는 건지 몰라서 손을 안 들었다고 합니다.
"(웃음) 아~ 마니또는 이태리어로 비밀친구라는 뜻인데, 제비뽑기를 해서 뽑은 친구를 몰래 도와주거나 선물이나 편지를 주는 등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거야."
"오... 재밌겠다! 그럼 저도 할래요!"
작년에도 이맘때쯤 아이들과 마니또 활동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족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마니또의 선물을 못 받은 딱 한 명의 학생만 빼고 말이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주의할 점들을 전달했습니다.
"얘들아, 근데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 만약에 마니또가 되면 꼭 상대방을 잘 챙겨줘야 해! 상대방 마니또를 위해서 열심히 마니또 활동을 했는데, 정작 본인은 마니또에게 아무것도 못 받으면 너무 슬프잖아..."
"네~~~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재미있게 운영을 하고 싶어서, 마니또 미션 수행지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기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끔, 선행을 할 때마다 마니또 포인트를 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마니또에게 인사를 하면 1점, 마니또의 말에 웃어주면 2점, 일을 도와주면 3점, 편지를 쓰면 4점 이런 식이었습니다. 마니또 포인트를 많이 쌓은 친구에게는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열심히 마니또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발표일이 다가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었습니다.
"와... 진짜 긴장된다. 내 마니또는 누굴까?"
"자, 지금 번호 추첨에 당첨된 사람은 자신이 추측한 마니또를 말하고, 만약 추측이 틀렸거나 도저히 잘 모르겠으면 '마니또야, 나와라!'라고 외쳐주세요."
그러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불만과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아니, 선생님. 저희들이 애기도 아니고 '마니또야 나와라!'는 너무 유치한 거 같은데요?"
"흥, 선생님 마음이거든~ 그리고 선생님 눈에는 너희들이 애기로 보이거든? 그렇게 안 외치면 너희들 마니또의 정체는 평생 알 수 없을 거야."
결국 제 고집에 진 아이들은 자신의 마니또를 열심히 외쳤습니다.
"마니또야, 나와라!"
"그래, 내가 마니또다!"
마니또의 귀여운 등장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와... 네가 마니또였어? 헐..."
"야, 근데 너 왜 계속 내 인사 안 받아줘? 나 좀 섭섭했다?"
"아... 나한테 하는 줄 몰랐어..."
"자! 두 사람 친해지자는 의미에서 지금 반갑게 인사하세요~(웃음)"
마니또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질수록 반 분위기는 점점 화기애애해졌습니다. 다들 선물과 편지를 받고 기분이 좋아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고, 이제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자, 진석아! 일어나서 네가 추측한 마니또는 누군지 얘기해볼까?"
근데 진석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진짜 제 마니또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제 마니또가 저한테 해준 거라고는 아침에 제 책상 위에 올려둔 이 야구공 모양의 초콜릿 하나밖에 없어요."
진석이의 눈빛이 슬퍼 보였습니다. 그래도 진석이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힘껏 마니또를 불러보았습니다.
"마니또야, 나와라!"
그때 한 명의 여학생이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일어섰습니다. 진석이가 바라던 반전은 없었습니다. 진석이가 예상한 대로 진석이의 마니또가 준 것은 야구공 모양 초콜릿이 다였습니다. 사실 친구들이 이렇게 마니또 활동을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생각이 났고, 초콜릿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고 했습니다.
마니또의 얘기를 듣고, 진석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진석이가 우는 것을 지켜보는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아침부터 그 누구보다 기대하고 설레하던,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마니또 활동에 참여했던 학생이 진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진석이는 상처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방금 전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자신의 마니또에게 줬는데, 그 마니또의 반응이 생각보다 영 시원찮았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아... 엄마가 아침에 혹시 선물 못 받아도 슬퍼하지 말라고 할 때, 뭘 그런 걸로 슬퍼하냐고 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너무 슬퍼요... 계속 눈물이 나와요..."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진석아, 괜찮아. 이 형아가 마니또는 아니지만 선물 줄게. 기운 내 인마!"
저희 반의 까불이 성원이가 진석이를 위로하며 자신의 초콜릿을 진석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진석이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진석아, 아까 발표해서 받은 제티야. 너 줄게."
"진석아, 힘내!"
그렇게 해서 진석이의 책상 위에는 아이들의 코 묻은 선물들이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고마워..."
그제야 진석이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친구들의 선물에 감동한 눈치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진석이가 제게 다가와서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아까 진짜 '남한테 베풀어줘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라고 생각할 뻔했는데, 친구들 덕분에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 진석아. 네가 베풀면 언젠가는 또 그게 돌아오게 돼 있어. 그리고 이번에 마니또 활동하면서, 순수하게 베푸는 즐거움도 느껴보지 않았니?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즐거움 말이야."
"맞아요. 친구한테 잘해줄 때, 은근히 기분이 좋았어요. 선생님 저 다음번 마니또 할 때는 더 열심히 활동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