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 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열정적인 교사 중 한 명이었다. 그땐 하루하루 반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너무나 보람차고 즐거웠다. 밤늦게까지 과학탐구대회 지도를 할 때에도, 새벽이나 주말에 학교에 나와 스포츠클럽 농구대회 지도를 할 때에도, 밤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다. 조금이라도 추억을 더 쌓기 위해서, 주말에 아이들이랑 산에도 가고 학교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으나 정신적으로는 보람으로 하루하루 충전됨을 느꼈다. 아이들이 나의 노력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육체적 피곤함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선배 교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애들한테 잘해주지 마. 나중에 선생님만 상처받아."
"열심히 하고자 하는 네 마음은 이해하는데 결국에는 다 부질없더라. 너무 열정적으로 하지 마."
또 가끔가다 어떤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과격하게 표현을 하기도 했다.
"지금 학부모랑 애들 전부다 네 편이고 학교 생활이 마냥 행복할 거 같지? 아니야. 자기 애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좀 불리한 거 나오기만 해 봐. 완전 180도 바뀌어서 교사를 얼마나 괴롭히는데. 교사의 열정? 다 부질없는 짓이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마. 나중에 상처받아."
솔직히 좀 서운했다. 열심히 하는 후배에게 칭찬을 못 해줄망정 오히려 의지를 꺾는 조언이나 해주고...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길래 갓 임용된 후배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들에게 이런 류의 조언들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믿었기에, 교사가 진심을 다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학부모나 아이들이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 8년의 시간이 흘렀다. 군대를 제외하고 6년의 교직생활 동안 가끔씩 마음 아픈 일들을 겪기도 했지만, 운 좋게도 좋은 아이들, 좋은 학부모님들을 만난 덕분에 행복한 교직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초임 교사 시절과는 달리 그동안 주변의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사례 1. 아이들이 원해서 컵라면 파티를 했는데, 한 아이가 스스로의 부주의로 화상을 입었다. 다짜고짜 학교에 찾아와서 이 모든 게 선생님 탓이라며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학부모.
사례 2. 아이 기분 좀 상하게 했다고, 1년 동안 아침마다 학교에 찾아오고 밤마다 전화를 하는 등 밤낮없이 선생님을 괴롭히는 학부모.
사례 3. 선생님이 생기부에 솔직하게 그 아이에 대해 적었다고(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친구들 수업을 방해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내용 수정해 달라고 몇 달간 밤낮없이 선생님 개인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하는 학부모.
사례 4. 수업 자료로 잠깐 몇 분 일본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국이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냐고 선생님한테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다이렉트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학부모.
첫 번째 사례는 인근 학교에 근무하던 신규 선생님이 겪었던 사건이다. 다짜고짜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는 선생님의 뺨을 때렸고, '어린 너랑은 할 얘기 없고 너희 부모님 빨리 불러와라.'라며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결국 그 선생님은 그 충격에 몇 달간 병가를 내셨다.
두 번째 사례는 당시 학교 동료 선생님께서 겪었던 사건이다. 1년 내내 그 학부모가 선생님을 괴롭혔던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 학부모 전화만 오면 선생님은 덜덜 떨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결국 선생님은 명퇴를 하셨다.
세 번째 사례는 내 친구가 겪었던 일이다. 친구는 민원 때문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도 전부 생기부에 좋게 써주는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반에 정말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어서 그것도 나름 표현을 부드럽게 해서 행동특성발달에 썼는데, 그걸 본 학부모가 극노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전화와 문자를 해대는 학부모 때문에 교직에 대한 애정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네 번째 사례 또한 내 친구의 이야기다. 이 친구는 다들 맡기를 꺼리는 과학탐구대회 지도도 반 아이가 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방학 때 학교에 나와서 아이들을 지도한 친구다. 자타공인 열정으로 똘똘 뭉친 훌륭한 교사다. 하지만 이 친구 또한 어처구니없는 민원을 받아본 뒤에는 열정이 많이 하락했다고 한다. 물론 모든 학부모와 애들이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동안 마음과 감정이 상했다고 한다.
주변의 사례를 보며 나 또한 언제든 억울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세상에는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동안 나에게 사건, 사고가 없었던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도 주변에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학교 분위기도 많이 위축되었다. 그걸 확연히 느낀 게 작년에 물총놀이를 추진할 때였다. 날도 덥겠다 수업 진도도 다 나갔겠다, 반 아이들이 너무 원해서 물총 놀이를 하기 위해 사비로 물총을 구입했다. 6학년 총 9반이 반별로 돌아가면서 물총놀이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들께 제안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들이 걱정을 하셨다.
"반에 소수의 원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의 부모님들한테서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요?"
"물총놀이를 하다가 감기에 걸리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민원 들어오면 어쩌나요?"
"수업 안 하고 애들 데리고 논다고 민원 들어올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정말 어처구니없는 걱정이었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걱정들이 현실화되는 게 요즘 학교다. 10분이면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물총 회의'는 민원에 대한 걱정으로 일주일을 끌었다. 비단 물총놀이만 그럴까? 학교 대부분의 활동이 이렇다. 그만큼 선생님들의 활동이 많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소수의 민원으로 하락한 선생님의 열정과 위축된 활동은 고스란히 대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주말에 애들이랑 만났다가 혹시나 사고 나면 전부 선생님 책임이니, 주말 활동 하지 마세요.
과학탐구대회 밤늦게까지 지도하면, 학부모 민원 들어올 수 있으니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조금만 서로 대화해 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 학폭사안도) 괜히 선생님이 중간에 끼어들면 선생님이 다치니깐 선생님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애들 혼내지 마세요. 우리 아이 기분 나쁘게 했다고 우리 아이만 편견을 가지고 본다고 민원 전화올 수도 있어요.
열심히 해서 욕먹고 민원 받을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아요.
솔직히 무섭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교직 생활을 평탄하게 해나가고 있지만, 언제든 주변 동료교사분이나 친구들처럼 악성 민원에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렵기도 하다. 내 인생을,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교직 환경이 점점 황폐화되어 간다는 게. 가끔씩 악성 민원을 받아 교직을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직장에서 잘리면 혹은 당장 그만두면, 뭘로 먹고살지 고민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에는 학교라고 하면 학을 떼며, 이미 교직을 떠났거나 교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선생님도 있다.
최근 선생님 한 분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이 선생님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다. 이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 관계자 등 교육공동체 모두의 문제다. 개인의 문제라 치부하기에는 이미 전국 수많은 교실에 문제들이 만연해 있다.
가끔 가다 기사나 댓글을 보면, 정치적 논리를 내세우며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비난하거나 학부모vs교사 혹은 신규교사 만의 문제로 몰아가는 내용이 보이곤 하는데 이게 정말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향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빨리 교사들과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는 다시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수업 방해 없이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 폭력법과 아동학대법 개정 등 교사의 인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킬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이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