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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 3위를 하다.

by 교실남

재외 한국학교에서는 해외에 학교가 위치해 있다는 특성 때문에 국내에서 운영하는 행사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컵스카우트 행사가 있더라도 워낙 비행기값이 비싸고 오고 가는 시간이 길었기에 참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웬만한 행사들은 해당 시도교육청이나 지원청 안에서만 진행하기에, 우리가 참여할 만한 대회나, 체험 프로그램, 행사가 국내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우리 학교의 유초등 학생수는 약 70명 정도이고,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유치원 때부터 이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대부분 고3이 될 때까지 이 학교에 다닐 예정이었다. 주변에 한국 학교가 여기 하나밖에 없고 지역에서 한국인 학생은 자신 밖에 없기에, 아이들에게 유일한 비교 대상은 반 친구들이었다. 전형적인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이다. 물론 가끔씩 주변의 중국, 캐나다, 일본 학교와 교류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경험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부족한 아이들의 경험을 채우기 위해 한국에서 아이들이 참여할 만한 대회나 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면 신청을 했다. 전국(재외 포함) 학교 대상 비대면 학교스포츠클럽 참여도 그 일환이었다.


비대면 학교스포츠클럽은 코로나 이후 생긴 프로그램으로 말 그대로 비대면으로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학교는 댄스, 달리기, 농구 부문에 참여를 했다. 역시 체육과 관련된 대회라 그런지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했다. 무려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지원을 했다.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댄스에 지원을 했다. 댄스는 1분 이내의 댄스 영상을 촬영해서 보내기만 하면 됐다. 당시 한창 댄스붐이 불고 있었기에, 따로 지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알아서 연습하고 촬영을 했다. 달리기는 기본 세팅이 필요했기에, 내가 세팅 준비를 해놓고 아이들을 불러서 한꺼번에 기록 측정을 했다. 기록 측정을 하는 과정을 찍어서 보내면, 주최 측에서 기록을 집계하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다음은 농구. 농구 미션은 제한 시간 내에 두 명이서 번갈아가며 패스와 드리블을 활용해 레이업을 많이 넣는 거였는데, 문제는 지원한 6학년 아이 두 명 다 레이업을 하나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예선 영상 제출까지 약 일주일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웬만한 각오와 연습량 없이는 레이업을 익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한 번 도전해 볼래? 아니면 그냥 다음에 도전할래? 만약 도전한다고 하면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당연히 도전해야죠. 한 번 해볼게요."


그 이후로 일주일 동안 점심시간마다 레이업, 드리블, 패스를 연습시켰다. 제한 시간 내에 개수를 많이 채우는 게 통과 조건이었기에 이를 역이용한 몇 가지 꼼수(?)들도 아이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아이들은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훈련에 임했다.


일주일이 지나 예선 영상 제출일이 다가왔고, 두 명의 아이들 모두 풀컨디션으로 영상 촬영에 임했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1분 동안 패스, 드리블, 레이업을 했다. 개수를 세어보니 10개가 나왔다. 이보다 빨리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일주일 뒤, 금요일에 현장체험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예선에 통과했다는 카톡 연락을 받았다. 근데 갑자기 내일 토요일 오전에 본선이 있다고 공지하는 것이 아닌가. 카톡 분위기를 보아 다른 학교에는 전부 공문이 갔지만, 에듀파인이 없는 우리 학교에만 공문이 오지 않아 나만 모르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아... 역시나 항상 소외받는 재외한국학교...


그래도 어쩌겠는가. 대회 당일 알려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예선 통과 소식을 알려주니 날아갈 듯이 기뻐했다. 방금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와서 피곤할 텐데도 학교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였다. 하필 그날 나는 현장체험학습 담당자였던 터라 심력을 상당히 소모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상태여도 아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고자 하니, 그에 대해 호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1시간이 넘게 대회 연습을 했다.




다음날 오전, 대회가 시작되었다. 본선에서는 서울, 부산, 제주, 광주, 재외 각각의 지역에서 대표로 뽑힌 팀으로, 총 5팀이 경쟁을 했다. 주최 측에서 안내한 대로 ZOOM에 입장을 했다. 선생님인 나는 ZOOM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이 대회를 치르는 모습을 촬영하고, 주최 측에서 시작 신호를 주면 5팀이 동시에 1분 동안 레이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유튜브에서는 그 과정(=줌 화면)이 사회자들의 멘트와 함께 동시에 송출됐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진행 상황을 확인하며 점점 우리 차례가 다가오자 아이들이 긴장하며 말했다.

"선생님, 너무 떨려요. 실수하면 어쩌죠? 아... 진짜 온몸이 덜덜 떨려요."

"괜찮아. 떨리는 건 다른 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깐. 그니깐 실수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끝까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너네가 실수하면 다른 팀들도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할 수 있다. 파이팅!"


[자, 지금부터 초등학교 농구 부문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휘슬소리) 삐!]


휘슬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은 잔뜩 긴장해서 굳은 몸으로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앗! 3번째 슛을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미리 약속한 대로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다. 30초 즈음 지나자, 슬슬 몸이 풀리는 듯했다. 연습하던 대로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막판 스퍼트! 그렇게 1분이 지났다. (휘슬소리) 삐!


자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00초등학교 10개

00초등학교 9개

00초등학교 7개

00초등학교 7개

00한국국제학교 8개


결과는 8개로 전국 3등이었다. 연습 때 최고기록이 11개인 거에 비하면 생각보다 낮은 기록이 나왔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와!!!! 선생님 저희가 해냈어요! 전국 3등이에요!"

"얘들아 너네 그거 알아? 한국 내에서는 3등이지만 중국에서는 너네가 1등이야. 충분히 자부심 가져도 돼."

"아, 그렇게 되나요? 좀 민망하긴 한데. (웃음) 그래도 너무 기분이 좋아요. 날아갈 거 같아요."

"너희가 이렇게나 기뻐하니깐 선생님도 기분이 좋네."

"선생님, 이런 재미있는 대회 알려주시고, 저희들 그동안 농구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너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선생님이 살게!"




비록 비대면 대회라 반쪽짜리 3등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성취감과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이 날을 계기로 56학년 남학생들 사이에서 한동안 농구붐이 불기도 했다.


사실 다른 일도 바쁜데, 새롭게 일만 크게 벌인 거 같아 비대면 스포츠클럽 대회 신청을 괜히 했나 하는 후회도 했었다. 하지만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가 끝나고 아이들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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