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에게는 열성 팬 35명이 있다.

by 교실남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집단은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물론 재외한국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기존의 업무를 개선시키거나 바꿨을 때 또는 새로운 학급 활동을 했을 때, 동료 선생님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있어? 그냥 예전대로 하면 안 돼?"

"좀 편하게 가지 교실남은 쓸데없이 일을 만들더라. 안 그래도 학교일 많은데."

"선생님이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 반이랑 비교되잖아요. 어휴..."


첫 해 동안 선생님들에게 앞뒤에서 계속 들었던 말들이다. 매번 열심히 일을 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상황이 자주 연출이 되었다. 솔직히 칭찬도 없이 이런 얘기들만 계속 들으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힘이 빠진다. 하지만 난 끝까지 내 교육철학과 소신대로 업무를 추진하고 학급 활동도 열심히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열성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열성팬들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오늘은 35명의 당시 나의 열성 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반 아이들 (11명)


상당수의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저희 아이는 선생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따르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광신도 같아요.'라고 여러 번 말씀하실 정도로 반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다. 학기 초에 뜬금없이 매일 데일리 리포트 쓰기를 할 때에도, 온라인 저녁 스터디를 운영할 때에도 아이들은 군말 없이 내 제안에 따라주었다.


자기 계발 보상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도 흥미를 보이며 내 의도대로 잘 따라와 주었고, 내가 운영하는 행사나 업무가 있으면 거의 대부분 참석을 했다.


사실 컵스카우트와 학생회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반 아이들 덕분이었다. 교실남 선생님이 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할 거라며, 우리 반 전원이 모두 컵스카우트와 학생회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고, 심지어 아이들이 각종 수합, 짐 옮기기, 행사 세팅하기, 아이디어 제공 등 각종 일들을 옆에서 도와줘서 일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컵스카우트 체험, 체육대회, 학예회, 수영, 야영, 주말 체험 등 열심히 준비한 활동을 마칠 때마다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며 선생님 감사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절로 힘이 났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부모님들 (22명)


학부모님들은 내가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매번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학기 초, 학급 단체방에 데일리 리포트 쓰는 법을 안내해 드렸을 때도 이를 소개한 내가 뿌듯해질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셨고, 컵스카우트나 체육대회 같은 큰 행사를 했을 때에도 학부모님들께서는 항상 고생했다고 감사인사를 보내주셨다.

데일리 리포트 설명을 들으신 뒤 반응(좌, 중), 체육대회 이후(우)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에 걸려 하루 밖에 못 쉬고, 일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장이라는 이유로 주말에도 출근해 컵스카우트 체험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여러모로 서운하고, 서러웠다. 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위안을 받았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감사인사 덕분에 나는 빨리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좌), 학기가 끝났을 때(우)


어떤 일을 추진하든지, 학부모님들은 나를 적극 지지해 주셨다. 마치 '교실남 선생님이 뭘 하시든지 우리는 항상 선생님을 응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았다. 학부모님들이 매 번 이런 반응이시면, 솔직히 교사 입장에서는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 더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덕분에 여러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었고, 교육 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밖에서 눈싸움 했을 때(좌), 시험이 끝났을 때(중), 학기 말(우)



교장 선생님 (1명)


"교실남 선생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어요? 진짜 대단해요."


매 번 아이디어를 들고 갈 때마다 칭찬과 여러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던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한 활동들이라면 정말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다. 덕분에 원 없이 아이들과 활동을 즐겼다. 신규 이후로 관리자분들이 잘 허락해주지 않아 몰래 나갔던 주말 체험활동도 교장 선생님 허락하에 마음 편하게 아이들과 활동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교장 선생님은 무조건 오케이만 하지는 않으셨다. 계획에 하자가 있으면, 매의 눈으로 발견을 하시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고, 그 덕분에 기획하는 능력이나 넓은 시야로 업무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향상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응원과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난 자신감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아내 (1명)


마지막 소개할 나의 팬은 바로 아내다.


첫 해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갈까 말까 계속 고민할 때, 아내가 없었다면 난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교실남, 너 1년만 하고 돌아가면 분명 나중에 후회할걸? 네가 정말 아이들과 하고 싶었던 활동들, 그리고 아이들이랑 학부모님한테 약속했던 활동들 아직 다 못했잖아. 이번에 돌아가면 지금 기억이 계속 떠올라서 평생 후회할 수도 있어.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에 보상받는 순간이 꼭 있을 거야. 우리 조금만 참자."


항상 아내는 내가 힘들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아줬다. 퇴근하고 저녁에도 집에서 일을 하고, 한글학교와 컵스카우트 때문에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분명 외로웠을 텐데도 아내는 나의 소신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매번 경청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기에 힘들었던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이렇게 35명의 열성 팬을 소개했다. 이 분들이 없었더라면 끝끝내 나는 내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1년 만에 재외 한국학교 생활을 그만두고 그때의 기억은 악몽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 덕분에 난 힘들고 힘들었던 1년을 버틸 수 있었고, 당시의 기억들은 내게는 고통보다는 대부분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keyword
수, 금, 일 연재
이전 16화비대면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 3위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