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리서치랩 거점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공간의 매니저로 지원을 해 보시겠습니까?"
"네! 해보고 싶습니다"
2000년대 중반 나는 인도를 여행했다
배낭 하나에 간단한 옷가지와 일기장, 시디플레이어와 칫솔 치약, 두루마리휴지 같은 생필품을 넣고 만 1년을 인도 중부 북부 남부를 돌았다. 내 인생을 둘로 구분해본다면 인도여행 전과 후, 바로 그 인도여행이 기준점이 아닐까. 인도여행전에도 후에도 나는 인생에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물질을 쌓아 나를 지키려던 생각을 버렸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고행 속에서-그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멋모르고, 아니 인도여행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줄 알고 다른 배낭여행객들을 따라 에어컨 없는 후덥지근한 3등 열차에서, 먼지바람으로 이미 먼지구석인 좌석에서 웅크리고 이틀밤을 보내며 도시간을 이동했고, 소똥으로 발디딜틈 없는 질퍽한 좁은 골목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이동하는 모든 장소에는 진한 외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들, 가난한 현지인들과 가난하거나 혹은 용감한 여행객들이 있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이라 우리는 어디서나 눈빛만 통하면 서로가 아주 매력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눈을 맞추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혹은 전에는 상상도 못해본 자신의 여행모험담을 풀어놓았다. 첫만남에서는 조심스럽고 매력적인 이국인으로, 두번째 세번째 반복되는 만남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미국의 유명잡지 편집자, 남아공 병원에서 근무하는 캐나다인 간호사, 다양한 국적의 학교선생님들, 공학자, 학생들. 직업과 피부색과 나이는 다양했지만 어딘가에 우리는 분명 공통된 사고와 이해, 고민이 있었고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정이 있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지만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는 대부분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럼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보편적인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인도인처럼...] 책을 읽다보면 가끔 이런 비유를 볼 때가 있었다. 그런 표현이 나올만하게 인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넘쳤다. 그러나 놀랍게도-건방진 소리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건 정말 놀라움이었다-그들의 희노애락도 그 깊이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인도사회는 여전한 카스트 잔재속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더럽고 힘든 일들이 주어졌다. 그렇게 더럽고 힘든일을 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그들은 천한 대접을 받았다.
사회 시스템. 어떤 시스템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울 수 있을까.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안정된 한국인으로서 엿본 가난한 인도인들의 삶은 지옥의 모습과도 흡사했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도 희노애락을 갖었고 웃고 울었다. 그것이 놀라웠고 또 그래서 연민이 갔다. 나의 노동력의 가치와 그들의 것에 차이란 무엇일까.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지않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내가 속한 사회는 영원히 안전할까. 나를 보호해 줄까. 쫓기듯 일하고 저축하고 돈을 모으면 나는 끝까지 행복할까. 저런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내가 안전하기만 하면 정말 행복할까.
한때 나는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생명체에 비해, 다른 종족에 비해, 다른 이들에 비해. 그러나 세상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와 같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했고 결국 그 누구도 상대적인 우월함, 특별함으로 세상의 특별대우만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게 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발생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의 불유쾌함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나의 불유쾌함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결국 나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며 심각한 환경문제, 실업문제, 인권문제등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요소들에 대한 고민은 바로 나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우리가 만들어 가고 싶은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또 그 일은 누구의 몫인가?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 다양한 실험으로 해결책을 찾고 싶은 사람들, 사회의 건강한 힘을 키워가고자 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