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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빈 Oct 01. 2021

뉴스통신 기자의 '얼토당토않은?' 장편 저널리즘 스토리


1. 모바일 환경이라고 기사가 짧아야만 할까. 

화면이 작으니 짧은 기사가 클릭·트래픽에 유리하다는 정도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일 텐데. 

이게 만고의 진리로 규정되고 논의의 창을 닫히면 세상이 더 슬프게 될 것 같아 모바일 시대의 장편 저널리즘 이야기를 꺼내 본다. 뉴스레터 등 유료구독 서비스의 상당수가 장편인데도, '모바일로는 짧은 기사'라는 일반화된 신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듯하다.

베를린 특파원 시절 특파원들 가운데 일반적인 기사, 특히 이슈 연결성이 없는 기사는 가급적 짧게 써온 축이었다. 유럽 특파원 중 가장 짧게 썼을 듯. 

반면, 어떤 기사들은 분량에 제한 자체를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임기 내 쓴 전체 기사의 5%가량에 해당됐다. 일주일에 한건 정도 빈도였다. 

심층 기획성, 발굴형 기획성 기사를 쓸 때는 분량보다 내용 자체의 충분한 완결성을 우선시했다. 앞에 몇 줄만 읽으면 '야마'를 알게 돼 흥미가 떨어지는 일반형 박스 전개 방식이 아니라 '이게 무슨 이야기지?'라는 궁금증을 계속 일으켜 계속 스크롤을 하게 하고, 문장 전개 흐름이 자연스러운 스토리형으로도 많이 시도했다. 

뉴스통신 기자지만 애초 베를린에 가기 전 뉴미디어판에 가끔 기웃거리면서 심층적인 장편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미래'의 주요 축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힙베를린](https://bit.ly/3opciF8) 시리즈, 연중기획 [서독의 기억](https://bit.ly/3ipxU09), 112년전 헤이그특사 인터뷰(https://bit.ly/2Wy0cOq , 이건 안긴듯) 등 독일 옛 언론 속 독립운동사, 강소기업 기획, 베를린 소녀상 철거명령 논란 관련 등의 [특파원 시선](https://bit.ly/3uuYKZz) 기사를 쓸 때 애초 정한 분량은 없었다. 

특히 내가 내세운 새로운 가설인 동서독 분단기 '서서갈등'을 학계에도 증명해야 하는 [서독의 기억] 시리즈는 편당 4천자를 넘기 일쑤였다. 24편 시리즈니, 자수로 따지면 총 10만자 안팎 분량의 기획이었다. 

임기 만료 9개월 전 시작한 전 특파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특파원 시선]의 첫 주자였는데, 그때 서구사회의 마스크 거부 문화의 원인을 중세시대 경험과 복지시스템으로 파고들면서 4천자를 넘게 쓴 듯. 잠깐 이유를 설명하자면, 팬데믹 초기에 유럽 사람들이 마스크를 안 쓰려 한다는 표면적인 이야기야 독자들이 대충은 알기는 아는 이야기일 텐데, '정말 왜?'라는 부분에서 역사적·사회적 분석을 접하고 싶은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가정했다. 나름 며칠간 밤시간을 희생해가며 취재·현지 박사들과의 토론을 통해 준비한 기사(https://bit.ly/2XZm6ud)였다. [특파원 시선] 코너에 대해 윗선에서 포맷을 정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첫 주자로 나선 것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칼럼식 요소를 다소 결합한 기사 포맷을 적용해봤다.

장편 저널리즘 시도는 '배고픔'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3천자 이상의 기사의 경우, 스트레이트성 사안 발생 당일 후다닥 말아버리기도(업계 용어) 하는 박스성 기사 외에 제대로 된 기획성 기사를 써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런 터에 '약속의 땅'(?) 베를린에서 새로운 패턴을 계속 실험하고 익숙해지려 했다. 

기본 역할만 해주면(물론 이것만 하는 데도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이 소요되지만) 특파원이란 자리가 하기나름에 따라 자율권을 꽤 행사할 수 있는 특수성을 품고 있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2. 장편 기사의 통계적 효과는.

보통의 기사가 다른 특파원들에 비해 비교적 짧았어도, 기획성 기사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사를 길게 쓰는 특파원으로 오해하는 사내분들도 있었던 듯.  

장편 기사를 쓰면서 트래픽에도 다소 신경을 썼다. 통계 분석도 간간이 했다. 

특파원이 슬러그를 단 연중기획과 기획시리즈를 하는 것은 사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웠던 일이라 나름 명분이, 나쁘지 않은 성적표가 필요했다. 

이런 기사들의 트래픽이 처참하면 '모바일에선 짧아야 해'라는 일반명제 앞에서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힘겹게 써내려가는 기획 시리즈를 유지할 명분이 떨어지는 셈이다. 

당시 경향성으로 보면 독일과 관련된 소재의 경우 '혐오·증오', '동양인 인종차별', '일본·위안부 문제·과거사', '중국', '한독 코로나 상황 비교분석'(자연스러운 국뽕적 요소 포함) 소재일 때 장편 기획성 기사라도 트래픽이 높았다.

[서독의 기억]을 연재할 때는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애초 계획에 없던 과거사 문제 소기획을 '서서갈등'과 연관 지어 중간에 내보내기도. 물론 과거사 편이 8부 24편 연재 가운데 트래픽이 가장 높은 축에 들었던 듯.

통계를 볼 때는 체류시간과 스크롤값을 중시했다. 해외는 체류시간에 따른 광고 측정이 일반적이어서 클릭수뿐만 아니라 체류시간에 대한 중요성도 큰 듯한데, 국내는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폭발력이 있는 소재의 장편 기사들은 체류시간도 길었다. 비슷한 주제의 짧은 기사와 비교해도 기사 길이 당 체류시간이 비슷했다. 반면, [힙베를린] 시리즈 가운데 한국 시민의 정서적 특성, 한국적 소재와는 거리가 먼 <식민지 학살 속죄탓인가…베를린 점령한 아프리카 예술> 기사는 현장취재 등 공을 들였지만, 분량에 비해 체류시간이 형편없었다. 기사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나가버린 독자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렇게 하다간 영업비밀 누설로 사내 SNS 규정에 위반일듯한 느낌이어서 여기서 그만 ^^.

다음 꼭지의 내용들은 아래 브런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게시글은 시간이 좀 지나면 휘발성이 강해 전체 내용은 기록용으로 브런치로 담아봄. 


3. 장편 기사는 언제 내보내야 할까.

여러 실험을 해봤는데, 결론은… 잘 모르겠다. 영업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정도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자면, 현실적으로 포털이 유통채널의 중심인 미디어판에서 포털에 공급되는 기사가 가장 적은 시간대에 장편 기사들의 설 공간이 더 확보되지 않을까. 네이버가 매체별 편집판 위주로 서비스를 개편한 이후 장편 기사들은 설 자리를 더 잃었을 듯 하다. 트래픽 경쟁이 더 심해지는 구조일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더욱 경쟁이 덜한 시간대에 장편 기사를 내보내야 할듯. 기자들이 일하지 않는, 기사를 보내지 않는 시간대를 주목하면 된다. '내일자' 신문 기사들이 온라인으로 쏟아지는 시간도 피해야 할 듯.

독자 측면에서는 모바일로 장편 기사를 언제 편하게 읽을까. 장편 기사의 경우 소파나 침대에 편히 앉거나 누워 긴 기사를 차분히 읽지 않을까. 혼잡한 출퇴근 시간,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근무시간에 장편 기사를 편히 읽을 수 있는 환경의 직장인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대략 어떤 시간대, 어떤 요일일지 상상을 하실 수 있을 게다.   

  

4. 장편 기사의 유통 채널은.

각 매체 홈피이지나 포털이 주요 채널일텐데, 아마 포털 의존도가 절대적일 듯. 여기에 추가할 수 있는 게 소셜미디어 채널이다. 장편 기획성 기사는 소셜미디어 채널 중 페이스북에서 가장 유효할 듯 싶다. 중장년층 이용자가 많은 측면을 감안했다. 내 타임라인에서는 2∼3개 매체의 기획서 기사 게시물이 가끔 노출된다. 이중 한 매체는 실시간 뉴스성 기사도 많이 게시하는 데 내 타임라인에는 기획성 기사만 보인다. 페북의 알고리즘은 잘 모르겠다. 대부분 실시간 뉴스만 게시물로 올리고 기획성 기사를 거의 안 올리는 한 매체는 눈을 어지럽혀 삭제해버렸다. 페북에서까지 실시간 뉴스를 굳이 볼 이유가 없어서다. 

매체가 소셜미디어 매체를 통해 기사 게시물을 올릴 때 한두 줄의 소개글과 링크를 다는 게 일반적인 포맷일 게다. 여기서 한 두줄이 중요하다. 특히 장편 기획성 기사일 경우에 그렇다. 내용을 정리해주면 안 된다. 장편 기획성 기사의 소재 자체는 이미 스트레이트로 사회에서 소화된 내용일 터다. 그 내용을 심층적으로 소개하거나 감춰졌던 이면을 상세한 논거에 기반해 들추는 게 장편 기사의 매력이다. 

그만큼, 기사의 결론이 아니라 기사를 호기심 있게 만드는 요인을 빼내 낚시성 소개글로 내걸 필요가 있다.

 

5. 장편 저널리즘의 부가 효과는.

장편 저널리즘이 매체에 가져다주는 효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트래픽 외에 말이다. 브랜드 충성도 강화 효과가 가장 크지 않을까. 뉴스레터 유료 구독 서비스들은 대체로 분석적인 장편 콘텐츠다. 약간 폭발력있거나 섹시한 뉴스통신사 기사가 하나 나가면 30분 내로 사실상 내용이 똑같은 기사가 수십개가 제목만 살짝 바뀌어 포털에 노출되는 현실에서 차별화된 기사의 욕구를 느끼는 독자들은 더 많아졌을 테다. 

언젠가 10년, 20년 뒤 AI 기사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려 자료기반 AI 기사와 심층 분석 인간 기사 간의 차별성이 커질 때 장편 저널리즘은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개인적인 확신이 든다.   


6. 장편 저널리즘과 인터렉티브 기사

장편 저널리즘이 꼭 글이어야 할까. 장편 저널리즘은 그래픽, 인터렉티브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 인터렉티브형 기사의 경우 뉴욕타임스가 상당히 잘한다. 화려하게 비주얼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라기보다, 그래픽적 효과와 텍스르를 결합해 독자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전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몇달 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지하철 추락 참사의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예로 제시해본다. https://nyti.ms/3iH9fEH


#저널리즘 #장편저널리즘 #힙베를린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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