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얘기다. 친구는 방에 홀로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눈 딱 감고 다니면 되는 회사는 왜 때려치웠을까?'
'왜 그런 취미를 갖게 된 걸까?'
'낯가림도 있으면서 모임에는 왜 나갔을까?'
'부모님께는 굳이 왜 싫은 소리를해댔고, 집을 나올 생각을 했을까?'
'하필 왜 이곳에 오게 됐을까?'
'직장은 왜 또 오자마자 바로 구하게 됐을까?'
'왜 이런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 때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편안하게 해줄게. 따라와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킨 후 그 목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복도 끝에 다다른 후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옥상 문을 열었다. 주변은 깜깜했고 벌레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만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이쪽으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따라갔고,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올라섰다.
"자, 한 걸음 더. 이제 쓸 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난간에 올라섰다. 더 이상 오를 곳도, 내딛을 곳도 없었다. 주변은 높이가 비슷한 건물 몇 채와 논, 밭 그리고 산이 보일 뿐이었다. 불이 켜진 방도 있고, 꺼진 방도 있다.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없다. 바로 아래에는 주차 되어있는 자가용들도 몇 대 보였다. 그 때 약간은 강하다 싶은 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바닷가에 치는 파도 중에서도 한 번씩 강한 파도가 치는 것처럼. 그런 바람이었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뒤에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니 죽은 장수풍뎅이가 바람을 타고 땅을 스쳐가고 있었다. 영혼 없는 눈으로 잠시 그것을 바라봤다. 그러자 장수풍뎅이가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