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혼자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는 내가 외톨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어렸을 때는 나도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형이나 누나, 아니면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나마 사촌형제들이 가까이 살고 있어서, 나는 그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내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혼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꽤 성장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이제 형제나 자매 같은 건 바라지도 않게 되고, 나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에 확실히 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같은 성당에 다니던 누나들에게 배신이라는 것을(뒤통수라고 해아 할까) 처음 당하고, 누구도 믿지 않기로 했다. 나는 결국 혼자고, 사람들은 그저 타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 혼자서 무얼 하는 것이 때때로 더 편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혼자 방구석에 처박힌 히키코모리가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쉽게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일정한 수준의 정, 그 이상은 주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와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그 이후로는 더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허물없는 사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단짝 친구 넷이 그나마 가장 허물이 얇은 사이일 것이다.
그러한 나의 가치관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구체적이고 확고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부모님조차도 결국은 타인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부모님께 어떠한 도움이나 지원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낳아준 것에 감사할 뿐, 그래서 나에게 무언가를 당연히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을, 부모님은 부모님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남들에게는 더 엄격해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든, 금전이든, 뭐든, 빚지는 일을 거의(절대로,라고 해도 될 만큼) 만들지 않는다. 만약 신세를 진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자를 붙여(내 나름대로의 계산이지만) 갚아버린다. 나는 그저 내일 사라져 버려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네가 어떻게? 라든가, 어떻게 3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냐? 같은 말은 너무 듣기 싫다. 상상만으로도 화가 난다.
이런 성격이 문제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금방 답이 나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줬지, 내가 도움을 더 받는 것도 아니기에. 이상 없음.
그런데 아주 가끔,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1년에 한 명을 만나기도 힘드니까,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물론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인생까지도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이 그를 사랑해 나를 만드셨데요.’ 라는 노랫말처럼, 그들로 인해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철저히 개인주의자이며 외톨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 꼭,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예쁜 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행복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부잣집 아들, 딸 역할을, 누군가는 행복한 가정의 구성원 역할을 맡는다. 누군가는 인생 내내 가난에 허덕인다. 그리고 누군가는 일찍 죽어버린다. 그렇다고 그 인생의 주인공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 모두 죽기 마련이다.
요즘은 자주, 수시로, 외롭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왜 내 인생이 외롭지 않으면 안 될까?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