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출장길 사이에 있는 동대구역에 기차가 잠시 멈추었다. 비단 목적지가 창원이 아닐지라도 대구는 그 남쪽이 종착역이라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중간 거점이다.
창원 출장을 자주 갈 일은 없지만 부울경 권역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힘든 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다는 KTX를 타고도 세 시간 가까이 걸리다니. 옆 자리엔 아저씨가 앉아 있어(나도 아저씨지만) 부대껴 노트북도 펼 수 없고 그냥 폰이나 끄적이고 있다. 폰 글쓰기는 올해 들어 생긴 취미 중 하나로, 문자 쓰듯 글 쓰는 버릇이 있는 나로선 빠르면 십 수분 안에 글 한편 뚝딱 쓸 수 있으니 생산성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취미다.
서울역에서 오전 8시 25분에 출발한 기차가 10시 10분께 동대구역에 멈춰 섰다. 대구 여자들이 무더기로 내린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거의 다가 예쁘게 보인다지만, 사회적 통념에 인식이 젖어든 탓인지 대구 여자는 더 예뻐 보인다.
송혜교도 대구였다니
대구 여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신물 나게 들었다. 고향이 경상도는 아니지만 각종 매체나 어른들의 구전을 통해 들어온 것 같다.
섬 출신이라 구경조차 못해본 대구 여자는 신기하게 경상도에서 학교를 다닌 뒤로부터도 좀체 보기 힘들었다.(경상남도에서 다녀서였을까)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간 뒤로부터 조금씩 주변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어른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본 대구 여자는 대부분 예뻤다. (사귄 적은 없다)
아이린까지. 아 이런 내가 졌다
동대구역에서 내린 대구 여자인지, 아니면 타지에서 놀러 온 것인지 정체 모를 여자들은 하여튼 예뻤다. 그녀들이 대구 여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구에 내린 여자조차 예쁘게 인지하는 마법의 선입견에 우리가 빠져 산다는 게 중요하다!
대구 여자가 예쁘냐는 질문은 인도 여자가 예쁘냐는 질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한마디로 무식한 질문이다. 인도 인구가 13억 인가 한다고 그러는데, 그중 딱 잘라 여자가 반이라고 치면 6억이 다 예쁘다는 소린가. 모집단은 징그럽게 많고 표본도 추출할 수 없는 이 괴이한 확률 통계가 인간의 인식을 장악한 건 대체 언제부터란 말인가.
대구에 가서 확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은 "대구 정말 더워요?" 밖에 없다. 물론 그건 한겨울이 아닌 이상 질문 따위 던지지 않아도 몸소 알겠지만. 대구 여자가 예쁘냐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어리석지만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남자는 대개 이 방면에선 "네" 또는 "아니오" 정도로 작동하며, 이 견지에서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