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작가 Jun 04. 2021

에세이라는 것들의 불편부당한 진실

에세이 범람의 시대다. 서점 서가에 오와 열 지어 가지런히 꽂힌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것들 다수는 에세이거나, 자기계발서거나, 아니면 경제경영서들이다.



에세이가 특히나 많은 이유로는 몇 가지 생각해보건대, 일단 진입 장벽이 낮다. 주제나 형식에서 자유롭다 보니 누구나 쓸 수 있고, 더욱이 요즘에는 작품성에 관한 판단 기준도 낮다. 사람들이 모두 피천득이나 김훈의 에세이를 원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다. 그래서 삶의 다양한 가벼운 소재들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꺼내듯 슥삭슥삭 나온다. 살은 찌더라도 분식은 먹어야 한다든지, 아무튼, 어쨌든, 그럼에도 등등 접속사나 부사로 관심을 끈다든지. 아무렴 별 관심은 없다. 서가의 센터를 장식하는 온갖 헤드라인의 유혹이 자극적일수록, 내 마음은 그들 앞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냥 자전거 여행, 공터에서, 같은 담백하고 짧게 박힌 문구에 오히려 마음이 간다.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에세이를, 나는 좋아하기도 하고 혐오하기도 한다. 전자의 이유는 삶의 무게를 그나마 덜어 주어서, 그리고 그 안에 가벼운 위트에 소량의 성찰을 얻을 수 있어서, 정도이고, 후자는 거의 대부분이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어서이다. 그런 작위에 나는 지독한 비현실성을 느껴 버리는 것이다.



가령 아내를 때린 사건은 에세이의 소재로 좀체 쓰이질 않는다. 왜인고 생각해보니 에세이야말로 저자의 경험과 삶을 팔아 대중성을 취하는 장르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소량의 자기 스토리를 판다면, 소재가 에세이스트의 향후 인생과 미래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겠다. 그리하여 아내를 때린 류의 소재는 타인의 이야기로 전가된다. 내 친구 또는 지인인 A가 아내 B를 때린 것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러면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된다. 소설은 에세이보다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책 한번 내보려는 다수가 소설보다는 에세이 쪽으로 방향을 튼다. 쉽고 수월하고 심하게는 막 써도 되니까.


그렇다고 에세이와 에세이스트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저 말은 나 역시도 해당되는 이야기니 말이다. 나도 에세이가 좋다(수월성의 측면에서). 각 잡고 앉아 노트북을 켜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때로는 걸으면서도 한 시간 안에 한두 편의 글을 뚝딱 써내려 갈 수 있으니 이토록 편리하면서, 생산자나 공급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두루 반영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싶다. (아, 말장난 류의 현대시가 있었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에세이가 조금 더 발칙해졌으면 좋겠다. 현실에 더욱 천착하여 그 이면까지 속속들이 훑어 내려갔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잔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면도 있겠지만 삶은 해치워 나가야 할 것들 투성이이며, 하루하루는 그것을 지워나가는 지난한 작업 과정의 연속이다.



비극을 쓰지 않는 에세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반쪽도 되지 않는 휘황 찬란, 혹은 담백한 말장난의 향연일 뿐이다. 심지어 그런 에세이들은 SNS의 텍스트 버전처럼 느껴진다. SNS에 그림을 빼고 살을 좀 붙여 여백 많은 책에 복붙 한듯한 느낌. 세 섞인 텍스트 몇 숟갈 첨가했을 뿐.


SNS에는 비극이 담겨 있지 않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방대한 희극의 대서사시가 있다면, 단언컨대 그건 바로 SNS다. 예쁘고 멋있는 신의 정령들이 화려한 치장을 마음껏 뽐내는 그곳. 자기 새끼들만 최고이고 영특한 그곳. 온갖 포장된 말투로 신기루 같은 우애와 친목을 다지는 그곳.


에세이는 그보다는 조금은 덜할지 몰라도, 비극과 그것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하지 않는 이상, SNS의 해설에 지나지 않다. 이 해설의 한계와 범주를 넘으려면, 우리 안의 일상적 비극과 그것을 통한 내러티브를 써 내려가야 우리 주변을 현혹하는 가벼운 에세이의 외연이 확장할 수 있다. 소설이 하기 힘든 체험적 실재를 전달하여 삶을 바꾸는 역할을, 그런 에세이는 해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쓰기론 8] 생각을 날리지 않게 잡아 두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