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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작가 Aug 20. 2021

치프 에디터님, 그러다 매거진 편집은 언제 합니까?

직책이 상실된 시대, 본업의 의미를 되새기다

매거진 한 권을 만들면서 수십 꼭지의 기사를 데스킹한다.

편집의 길이란...


우리 매체의 에디터들은 극히 한정적인 소재를 쓰기 때문인지, 스타일, 문체 등 개성의 편차가 크지 않다. 패션지, 남성지 등 다른 매거진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자 고유의 시그니처가 약하다. (망할 놈의 축구)


여기엔 물론 소재의 폭이 좁아 쓸 수 있는 어휘에 제약이 많다는 한계 탓도 있다.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나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편집장인 나는 후배 에디터들에게 부단히 강조한다. "튀어도 좋으니, 자기 만의 글을 써!"


우리 에디터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연재물은 필자의 개성이 물씬 드러나야 하는 꼭지다. 그래서 에디터들은 연재물을 마감해야 하는 매월 5일이면 스트레스로 머리쥐어뜯는다. 야마(일본말이라 좋아하진 않지만 업계에서 많이 쓴다. 알맹이의 일어 표현으로, 주제라 보면 된다) 찾기부터 시작해, 개요를 짜고, 그에 맞는 속살을 집어넣고, 보기 좋게 다지는 일까지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야마는 난데...


이렇게 출산한 글을 최종적으로 매만지는 건 편집장의 일이다. 이때부터 편집장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오는 '활자와의 전쟁'을 무사히 치러 내려면, 눈 부릅뜨고, 눈동자에 시신경을 집중해 단어, 조사, 표현, 문맥 등을 살펴야 한다. 마치 편집증 환자마냥.


사실 마감 주만 되면 이리저리 편집장 호칭을 부르며 찾아 대는 이들이 많기에 '편집'에 온전히 집중하기란 정말로 힘들다. 편집일을 온연히 수행해내려면, 새벽길을 거니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자갈 같은 어휘들을 긁개로 잘 긁어 솎아내야 하는데, 산만해진 정신을 핑계로 (사실 핑계 아님) 무심코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럴 때면 편집장으로서 편집 소임을 완수해내지 못했다는 무책임함에 죄책감이 들곤 한다. 편집장이 편집을 소홀히 하는 것만큼 죄악은 없을 것이다.


이걸 다 해야 한다구


다만 이 대목에서 편집장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이 시대의 매거진 회사들은 편집장에게 편집 업무만을 바라지 않는다는 거. 아니, 어떻게 보면 편집일은 편집장이란 직책 수행자에게는 크게 대수롭지는 않은 소일거리가 되어 버린 듯하다. 매거진이 안 팔리는 시대에 한가로이 교정지에 돼지꼬리와 밑줄 땡을 친다는 건, 소위 식자층이라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링타임 독서 같은 사치나 다름이 없다.


작금의 매거진 편집장들은 그라운드의 각종, 아니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 하는 올라운드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축구로 치면 본업인 중앙 미드필더부터 최전방 공격수에 중앙 수비수, 때로는 골키퍼 장갑까지 끼는 유상철 선수처럼 말이다.


이 시대의 매거진 편집장은 과중한 업무에 짓눌려 피곤한 삶을 산다. 하루 종일 활자의 늪에 빠져 허덕대다가도, 어떻게든 빠져 나와 다른 업무 전선에 투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후배 에디터들 제 몫만 해줘도 감사할 따름이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편집장을 끄집어낼 구원의 손길 따윈 없다.


즈엉말 미추어 버뤼게쓰어!!!


이번 주 화요일부터 시작된 야근은 보란 듯이 4연속일 기록을 이어 나가며 '편집 이외의 삶'을 마비시켰다. 사실 이 역시도 예견된 사이클이지만, 마비를 예방할 기력이나 수완 따위는 없다. 회사 책상머리에서부터 올라와 노트북 모니터를 거쳐 전이되는 활자의 대홍수에 무기력하게 쓸려갈 뿐.


더 무기력한 건, 텍스트의 밀물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각 부서의 요청과 업무 전달, 쇄도하는 클라이언트들의 전화, 체크해야 하는 각종 잡무들, 했다 하면 한두 시간은 이어지는 회의감 드는 회의 등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왜 우리 같은 부류가 편집장이란 호칭으로 불리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본부장이 더 어울릴지도.


편집장이라는 단어는 직책과 직급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 결합된 말이다. 편집을 하는데, 편집장이라면 단순히 편집만 하는 게 아닌, 편집을 통솔해야 한다. 최전선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즉 '편집 일개미'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해야 한다. 실제로는 광고, 영업, 관리 등의 업무에 최고 통수권자의 통제권이 상실해 버린 느낌을 받지만, 본연의 고유한 업무 또한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아무튼 어쨌든 이번 달도 무사 탈고


편집장이라는 호칭이 그리 썩 어울리지는 않은 시대에, 편집장이 나아가야 할 길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 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렇게 또 한 권의 책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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