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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Nov 15. 2019

심리학으로 바라본  82년생 김지영의 빙의 현상

내 안의 다른 내가 나타나는 이유

얼마 전에 딸과 함께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갈등과 어려움도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상의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끝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영화는 며느리기도 지나고, 아이들을 키울 시기도 다 지난 나이 든 여자인 나의 관점에서는 "여자가 사는 세상은 남자가 사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이 더 많이 공감받고 위안받는 느낌이었다.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김지영은 결혼과 출산 후부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된다. 일을 하던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 가사 노동은 녹록하지만은 않은 새로운 세상이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누가 할 것인가와 함께 바로 이어지는 고민이 있다. 바로 누구의 경력이 단절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이다. 이때 접하는 세상은 그동안 접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른 이야기는 암묵적인 남편의 태도나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등장하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은 나 자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양육은 엄마가 하는 게 낫지, 월급이 적은 사람이 희생해야지 등 사회는 아내보다 남편이 월급이 더 많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주체의 소리를 억압하라고 강요한다. 김지영 스스로도 이런 합리적 설명과 가성비가 좋다고 하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선 사회학적 시각에서보면 할 말은 많지만.. 이 글에서는 심리적인 부분만 보기로 한다.


김지영은 양육과 가사의 늪에서 발목이 잡힌 채로 스스로의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계속 계속 발목이 잡힌다. 스트레스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김지영의 마음속에는 친정엄마의 인격이 자라고, 또 외할머니의 인격이 자라기 시작한다. 김지영은 마음속에서 자라난 두 인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빙의 현상으로 나타나 해리장애를 앓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우리는 모두가 다 안다. 친정엄마와 외할머니는 진짜 김지영의 마음을 대변한 소리라는 걸.


 

김지영의 빙의 속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


사실 우리 마음 안에는 나(I am)라고 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인격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 슬픔이, 화남이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을 각각의 인격으로 등장시켜 보여준 것이나, '지킬 앤 하이드'에서 박사와 하이드처럼 상반된 두 모습도 평범한 우리들 안에 있는 모습을 조금 더 강조한 것이다.


사춘기 시기를 기억해보면 마치 안개가 드리운 듯 선명하진 않지만 스스로 ‘내 안에 서로 다른 자아가 너무나 많다’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사춘기를 '정체감 형성의 과정'이라며 봐주는 것 아니겠는가? 사춘기의 혼란감은 아직 나의 중심 주체가 서있지 않고 여러 개의 인격들이 통합되지 않은채 있기에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내안에 여러 명의 인격들이 살고 있다해도 나라고 하는 중심 주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조종대를 잡으면 슬픈 성격이 주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 감정은 부가적인 특성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쁨이가 주체면 기쁜 성격이 주가 되는 아이인 것이다. 지킬 앤 하이드도 마찬가지다. 지킬 박사가 중심주체면 악한 성격의 사람이고 가끔 착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이드가 주체라면 착한 사람이고 악한 부분은 조금 갖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럼, 내 안의 내가 나타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일상에서 내 안의 다른 나의 등장은 다음과 같을 때 등장한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 뚜껑이 열리면서 확 뛰쳐나와서 존재감을 빛내는 아이들이 있다. 공격적인 나, 냉정한 나, 비열한 나, 약삭빠른 나, 못돼 먹은 나 등등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다. 이들은 평소엔 우아하고 괜찮은 척하는 사회적인 모습 속에 숨어있다가 중심주체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통제불가의 상태에서 등장한다. 그럴 때는 나도 놀라고 상대방도 놀란다.


우리는 종종 통제불가의 화를 심하게 내고 나서 '아 미쳤지, 미쳤어, 그때 내가 왜 그랬지'하는 후회를 한다. 이런 후회는 중심 주체가 하는 소리이다. 이렇듯 주체의 힘이 약하면 약할수록 통제 불가한 상황이 많아지는 것이고 이때 튀어나오는 인격은 더욱 강하게 등장한다.
 

건강한 멘털일 때는 통제안된 내면아이가 실수하더라도 ‘창피한 흑역사’라며 애교로 넘기기도 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게 인간이고 너도 나도 완벽하지 않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멘털이 약할 때는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이 도저히 인정되지 않아 심리적으로 힘들어진다. 심하면 영화의 김지영처럼 자기인의 다른 인격을 기억조차 못하는 해리장애를 앓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주체의 힘이 약할때 내 안의  내적인 힘(무의식이라고 한다)들을 통제하지 못하여 생기는 빙의 현상이다.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 인간 안에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즉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 안에 내면의 소리들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잘 알아주고 이해하는 스스로 공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멘털을 관리하는 기본일 것이다.   


이 글은 “모든 고통은 성장을 위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경희 소장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기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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