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비합리적인 감정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잘 지내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관계를 망가트리거나, 술만 마시면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스스로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상담에 오기도 한다. 또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폭발하듯이 감정에 휩싸여 어쩔지 몰라 상담에 오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은 감정과 이성이 공존하며, 이 둘은 각자의 고유한 기능을 담당한다. 감정은 주로 '좋다/나쁘다'의느낌을 담당하고, 이성은 '옳고/그름'의 판단을 담당한다. 사람에 따라 이성과 감정의 비율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하나의 기능만 가지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이성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AI, 감정만으로만 살아간다면 사회화되지 않은 늑대인간일 것이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면 AI던지, 늑대인간이던지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 섞여 하루를 보내야 한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상담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감정의 미발달로 인한 문제이다. 이성이 지나치게 발달한 AI형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이 지나치게 발달한 늑대인간형은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와 이효리의 대화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아이유: 제가 들떴다는 느낌이 들면 기분이 안좋아요. 통제력을 잃었다는 생각 때문이죠.
이효리: 나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덜 웃고, 덜 슬프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
둘의 대화에서 우리는 각각 이성과 감정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효리의 경우 과할지 모르나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한 느낌이 들고, 아이유의 경우는 감정을 절제하고 억압하는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이런 경우 감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쪽은 아이유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말처럼 수월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억압된 감정들은 반드시 밖으로 삐쳐나오려고 한다. 그것이 감정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감정을 억압하는 이유는 감정이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두려운 감정이긴 해도 위험한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하게 표현된다면 나를 표현하고 보호해주는 감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쌓아두면 감정의 덩어리가 불어나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부정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미성숙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감정들을 억압하기도 한다. 감정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스스로 감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높아지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감정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온다.
인간에겐 이성과 감정의 영역이 균형있게 발달해야 한다. 어느 나이가 되면 학교 교육을 받고, 책도 읽으면서 점점 더 논리적이고 복잡한 사고가 가능한 상태로 발달하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도 적절한 발달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미성숙한 상태로 관계를 맺게 되니 여러 가지 심리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감정의 발달과정은 아이의 감정 상태에서 성숙한 어른의 감정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아이가 경험하는 감정은 쾌(좋다, 행복)와 불쾌(나쁘다, 화)처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한다. 좋다와 나쁘다의 감정은 거칠고 날것의 흥분 상태로 드러난다. 이런 일차적인 감정은 분화되지 않은 덩어리의 감정이므로 불안정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좋으면 죽을 듯이 좋아하고, 아프면 죽을 것처럼 운다.
아이와 같은 불안정한 감정 상태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주 있다면 이는 “내가 감정적으로 아직 어리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에 비해 성숙한 어른의 감정상태는 흥분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어린이들은 날것의 감정을 표현하고, 부모나 친구로부터 이해받고 수용되면서 흥분된 감정이 자신에게 녹아 들며 점점 차분해진다. 감정은 이렇듯 부정적 감정들이 수용되고 공감되는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발달한다. 자신의 감정의 색깔과 농도를 점점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이런게 가능해지면서 멘탈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불편한 마음이 느껴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중에 불쾌한 감정이 떠올라 뒤늦게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다. 사소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적 불편함을 잘 캐치하려고 노력해보자.
불편했던 마음은 알지만 그 감정의 색깔과 강도를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도되나? 슬퍼해도 되는건가? 등 자신을 믿을수가 없어 남들에게 묻거나 합리적인 잣대로 감정을 판단하려 한다. 내가 왜 불편한, 그 감정에 이름을 찾아보자.
마음이란 자신의 것임에도 확인해보지 않으면 온전히 알기가 쉽지 않다. 믿을 만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표현해보자. 표현해본 후 감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