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두가지의 과업을 가지고 태어난다. 첫번째는 사회적 동물로서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내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다. 외부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생애의 전 교육과정과 사회화를 통해 배울 수 있겠지만, 내면 세계는 안타깝게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방식으로 가르쳐줄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무시한 채 외부에만 적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비어버린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내부의 기준과 검열이 너무 심한 나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한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는 듯 하지만 사실 상담소를 찾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내부안테나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스스로가 잘 감지하고 상황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면 내부안테나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걔는 멘탈이 튼튼한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 외부에서 자극을 받아도 자신의 기준이나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극 상황에 대해서 내부안테나가 작동해서, 스트레스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감정인지? 등을 알면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것이 자아의 힘인 것이다.
자아의 힘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오는 기질적인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자신이 감정을 표현했을 때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 (대부분 부모인 경우가 많지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규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불합리한 일로 아빠에게 항의를 할 때 이유를 막론하고 '예의 없다'고 혼나게 된다면, 성인이 되어 상대에게 반대의견을 말할 때마다 스스로가 예의없어 보일까봐 겁이 나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예의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내 감정을 마음 안에서 억압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소리를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억압하고 삭제하는 경험이 많아지면 내부안테나의 힘이 약해지고 결국은 자아의 힘이 약해진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건강한 신체로 성장하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만 마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자아존중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고 싶다 또는 ~는 하기 싫다’와 같은 내면의 욕구를 잘 포착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잘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멘탈이 건강한 사람이다. 외향적이면 외향적인대로, 내향적이면 내향적인대로 자신의 성향이나 기질 대로 잘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욕구가 존중되는 경험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자아는 힘을 받으며 성장하고 그래야 상황이 변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잃치 않을 수 있다.
상담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거나 억압해온 역사가 반드시 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모르면서도 외면해왔던 경험으로 인해 결국 자기로부터 소외와 아픔을 겪는 것이다. 상담에선 사실 혼자의 힘으론 겪어내기 어려워 외면했던 소리를 용기를 내서 전문가와 함께 드러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내부안테나가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소리를 표현하며 내면을 일깨우는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집단의 욕구를 따라갈 것을 요구받는다. 자신의 내면을 따라가다간 이기적인 사람, 소심한 사람, 내지는 한심한 사람으로 지적 받기 일쑤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며 강요하는 문화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사회 안에서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지켜낼 의무를 가지고 있다. 외부 보다는 내부로,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에게 안테나를 조금씩 더 기울여 본다면 어제보다 조금씩은 더 스트레스에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