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소장 May 13. 2020

우리가 이별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

작은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에 우울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별로 인해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버려서  다시 일어설 힘을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한다면, 우리 안의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이죠. 


어떤 사람들은 왜 남들보다 더 힘든 이별을 마주하게 되는 걸까요? 


이별로 모든게 무너진 A씨의  이야기    


A씨(38세)는 헤어진 여자 친구의 소개로 상담실에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A씨의 문제는 상담실을 소개한 전여친과의 이별을 견딜 수가 없어서이다. 상담실에 오기 전에 전여친은 A씨를 신경정신과도 데려갔었다.     

상담시간 내내 A씨는 울기만 했다. 마치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좋은 스펙에 대기업을 다니는 괜찮은 청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의식주를 점검해보니 밥이 안넘어가서 약을 못 먹었고 잠도 못잔다고 한다. 죽을 것 같아서 술만 먹고 있다고 한다. 이별 후부터 직장에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해, 보다못한 상사는 A씨에게 휴가를 주었다. 이별 후 고통의 해결마저도 다 남들이 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A씨는 4-5년 전에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6개월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고 하며, 그땐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챙겨주었다고 했다. A씨는 상담자의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직 여자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만 반복해서 물었다.  


A씨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생후 백일경부터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주말이면 부모님은  항상 오셨다. 부모님은 A씨를 많이 사랑했고 원하는 모든 것은 다 들어주셨다. 그러나 매번 헤어질 때는 아이가 잠이 들면 사라지셨다. 아침이면 엄마 아빠의 부재를 실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A씨에겐 퍼부어주고 떠나는 불안한 사랑보다는 떠날 위험이 없는 안정적인 대상이 필요했다. 어린 A씨의 마음안에 사랑은 ‘완전한 밀착 혹은 완전한 절망’ 둘 중 하나로만 새겨져 있었다. 그는 연인이 생길 때마다 매번 상대가 떠날까봐 무서워 상대의 욕구에 맞추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억울하다고도 한다. 즉, 어린시절에 경험한 불안정 애착패턴이 연인과의 관계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별이 계속 어려운 이유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의 이별은 그동안 맺어온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와의 이별도 힘든데 특별한 사람과의 이별은 더욱 힘들기 마련이다. 마치 나와 연결된 모든 세계가 축소되는 듯하고, 내주변의 조명들이 다 꺼져가는 듯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절로 인한 우울은 이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고, 죄책감이나 원망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과정이다. 물론 사랑했던 감정의 깊이나 기간에 따라 외로움이나 우울함 등의 정도가 다를 수는 있다.    

어떠한 형태의 이별이든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정리가 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의 이별 후에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자신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등 일반적인 이별보다 심한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이별 후의 아픔 외에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직 심리적인 독립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신체적으론 성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타인에게 의존적인 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엄마와 한몸처럼 있을 때 편안하고 떨어지면 불안해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 심리적으로 동일시되어 의존적인 상태로 관계를 맺는다. 그들에게 연인은 자신의 일부이므로, 그런 연인과의 이별은 반쪽이 사라져서 혼자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심리적 독립이 이루어지는 과정     


인간의 심리적 독립은 충분한 의존기를 거쳐서 서서히 좌절을 경험하면서 독립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충분한 의존의 시기 없이 심리적 독립이란 불가능하다. 의존되는 경험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고, 신체적, 심리적으로 안정감 있는 환경을 제공될 때이다. 아이에게 의존대상은 안전하게 믿을만해야 한다. 그런 후에 서서히 중요 대상과의 작은 이별(좌절, 상실)등이 경험될 때 좌절에 대한 내성이 생기며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외부에 있던 안전한 대상이 점차적으로 아이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내면화 과정을 거친다. 즉 학교를 갈 시기가 되면 엄마와 떨어져도 혼자서도 잘하는 분리불안의 단계를 극복하며 독립으로 나아간다.    



이별의 상처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의 상관관계     


1. 안정적인 의존 관계가 결핍된 경우 

이별 후 찾아오는 외로움과 공허감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재현일 수 있다. 어린아이일 때 안정적 대상에 대한 의존 경험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이별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아서 성인기에 연애를 하면서 드러난다. 마음속에 항상 충족되지 않은 의존욕구가 지배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의존 욕구가 자기도 모르게 움직인다. 또한 사랑하는 연인이 떠날까봐 두려워 자신을 돌보기보다 타인의 욕구에 맞추게 된다.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속마음은 결핍된 의존욕구가 지배하는 어린아이인 것이다.  

   

2. 좌절 없이 과도한 사랑을 받은 경우 

어린시절에 과도한 사랑 또한 심리적 독립을 저해한다. 요즘은 자녀를 좌절 없이 최고의 상태로 키우려는 부모님이 많아졌다. 영유아기에는 부모님 품안에서 공주님, 왕자님처럼 대접을 받으며 자라야 세상에 겁먹지 않고 힘차게 나아간다. 그러나 유치원을 갈 무렵이 되면 부모님도 아이의 손을 서서히 놓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스스로 공주나 왕자가 아님을 자각하면서 현실세계의 좌절에 적응하게 된다. 따뜻한 온실 속에서 좌절 없이 자라면 온실의 가상적 세계를 꿈꾸며 그와 같은 연인을 찾는다. 그런 밀착된 관계가 행복할 때는 문제가 없으나 좌절의 시련이 오면 존재 자체가 휘청거린다.     



어떻게 하면 심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야한다. 어릴 때는 내 삶의 책임이 부모였지만 성인이 된 후의 책임은 고스란히 본인에게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많이 힘들고 아프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것을 극복해야할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알고 묵묵히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삶은 내가 살아가는 있는 지금이고, 현재의 모습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나의 미래다. 내 삶의 지휘봉을 상대에게 넘기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갈 때 심리적 독립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전 12화 그녀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