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소장 Oct 28. 2019

그녀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이유

당신을 가학적이게 만드는 피학성향의 E양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기반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남을 돕는것이 중요했어요


E양(25세)은 첫만남부터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E양은 도시로 취업이 되어 동생들을 데리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도시에서 E양은 사회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모임 멤버들과 친해지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그녀에게 모임은 점차 삶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회원 중 하나가 1년정도 외국에 가야할일이 생겼다고 했다. 모임에서는 해외 생활도 경험 할 겸 누군가가 같이 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나왔고. E양은 그녀를 돕고싶은 마음에 자원했다고 한다. 누가 보기에도 이상한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정신없이 그 상황에 스스로 빠져들었고,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E양은 회사를 퇴직하고 그 멤버를 따라 해외로 나갔다. E양에게 외국에서 1년동안 무얼하며 지냈는지에 대해 물어봤을때 그녀는 집안일을 주로 했다고 답했고, 그 기간이 후회되진 않고 나름 보람있었다고 말했다. 


귀국해서보니 상황은 악화되어있었다. 애초 반대했던 가족들은 더욱 더 E양에 대한 원망이 커져 있었고 지인들은  E양이 항상 자신에게 해가 되는 선택만을 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고 있었다. 



피학 성향이 가학을 불러일으키는 패턴


사실 E양의 이야기는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초기였고 최대한 억울한 E양의 마음에 귀기울였다. 상담초기라 그때까진 E양의 피학성향을 알아차리긴 어려웠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나는 형편이 너무 어렵다는 지인의 부탁과 함께 E양에게 상담료의 50%만 받고 진행하였다. E양은 첫회 상담료는 냈으나 5-6회기 상담이 진행되어도 입금은 안되었고 그와 관련해서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다시 상담료가 언급될때는 “알겠어요”라는 무심한 듯한 말만 하고 3-4회기가 더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입금은 없었고 언급도 없었다. 다시 상담료를 물어봤을때 E양은 담담한 태도로 “20%만 내고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내면 안될까요?”라는 태도를 본 순간 “아차”싶었다. E양을 다시 보아야했다.

   

그동안 E양은 대인관계에서 남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착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물론 그 선택들은 E양 자신의 철저한 희생이 있었기에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고, 궁극적으로 E양 자신의 상황은 더욱 악화시키는 선택이었다. 반면 상대는 그녀를 배려해줘도 당연히 받으려는 E양의 태도에 화가 나거나 무시하게되는 상황이 반복되는듯 했다.


상담 상황에서도 E양의 대인관계 패턴은 재연되었다. 피학성향의 E양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만큼 의연하게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고 느끼는 듯했고 “도덕적으로 자신은 당당했고, 비참하더라도 자신이 가치롭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태도로 인해 상대는 화가 나거나 그녀를 무시하는 등 가학적인 행동 패턴이 불러일으켜지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듯 피학성향과 가학성향은 잘 맞추어지는 퍼즐조각들 같다. 나는 피학 성향의 사람들에 대한 치료의 시작은 일반적인 상담 보다 더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E양을 보며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다. 피학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에서 피학-가학의 고리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상담자로서 나와의 관계에서도 그것이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1차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E양의 사례처럼 일반적으로 내담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대인 관계 패턴은 상담자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재연될 수 있다. 나는 이를 내담자의 상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로 사용하고자 했고, 그제서야 그녀의 행동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전 11화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스스로 자꾸 위축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