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예술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살면서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예술적인 감성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인지하고 그들이 어떤 선입견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시간, 장소, 분위기 작은 요소들이 그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그림을 직접 그린 작가도 본인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보는 시각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예술의 전당으로 작품을 보러 갔을 때 어떤 작가의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작품은 조개껍데기를 이용해서 조선시대 그림을 재해석화하여 그린 작품이었다. 처음 보는 기법에 나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그중 한 아저씨의 말이 기억이 남는다.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닌데 이게 그림인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순수미술을 전공해서 이 작품이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생소한 경험이라고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림은 보통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이건 분명 조각예술의 느낌으로 다가간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태만 액자 안에 있는 캔버스처럼 만들었을 뿐...
대학교 시절 내가 순수미술을 전공을 하고 있을 때.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서로 평가해 주는 일명 크리틱시간이 있다. 내 그림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만의 재료와 기법으로 그리는 스타일이었다. 항상 어떤 도전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내 그림평가에는 몇 명의 나의 경계리스트가 존재했다.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장으로써 나의 그림에 비평을 한다는 것은 나를 긴장하게끔 하는 요소다. 그리고 나를 비평하는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항상 내 그림만 되면 비평한다.
도대체 내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건가?
아니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사람들이 가장 유명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피카소가 그린 그림도 누군가에게는 예술의 경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니깐.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예술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예술이 주는 재미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예술적인 정답은 없기에 누구에게나 모두 다 좋게 느껴지는 작품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해결법이 없고 정답도 없는 이 예술의 세계에 도전하려고 노력했다. 대학교 3학년 때 내년 졸업전시를 위해서 여러 개의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나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재료와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했고, 그들의 장점만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사람들이 알만한 작품들과 아직 세상에 드러낸 지 얼마 안 된 신진작가들의 그림들의 장점과 왜 그들의 장점이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꼼꼼히 분석하고 기록했다.
그러나 모든 그림의 장점을 담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그것들이 담을 수 있는 재료와 기법은 공통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유화는 건조시간이 느려 물감층을 얇게 쌓는 글레이즈드 기법과 물감의 점성이 높아 두껍게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을 모두 다 사용할 수 있다. 물감의 점성이 높아서 그림의 입체감과 깊이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반대로 동양화는 비어있는 공간 즉 여백을 많이 이용하기에 가볍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런 장점을 모두 다 담기에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번 같은 붓질을 하고 또 다른 재료와 조합하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결과론적으로는 정답을 찾지 못했다. 단순히 어려운 주제인 것처럼 쉽게 뚝딱 나오는 그런 주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결과물들을 보면서 느낀 거는 그림을 그리고 작품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답을 더 찾기 어려웠다.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이 더 쌓이면 나의 완성된 그림을 가는 것보다 마치 분식집 메뉴처럼 여러 개의 선택지를 스스로에게 주어지고 그럼 나는 어떤 메뉴를 먹어야 하는지 고민을 계속하게 되는 현상을 겪게 된다. 심각한 경정장애가 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거지?
그렇게 방학이 되어서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정답을 얻지 못했는데 이제는 졸업전시를 위해서 나의 그림을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두려웠다. 이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허비되고 의미 없는 노력을 한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먼가 진도가 술술 잘 나가는 것같이 느꼈는데 나 혼자 갈길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4학년 1학기에 약 2달 동안은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젯소로 그림을 지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젯소로 그림을 지우고 반복한다. 지우는 과정은 내게 너무 가혹한 과정이지만 작년 많은 그림을 그려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나의 캔버스에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카페에 가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 작업을 하는데 문뜩 떠올랐다. 스케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왜 굳이 내가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할까? 그냥 캔버스에다가 스케치를 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실망할 거 그냥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기대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에서 내가 그림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들었다. 붓질이 아닌 연필로 끄적이는 과정이 내가 너무 좋아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그림을 즐기고 있는 나는 점점 완벽하고 완성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이것이 내가 후회 없는 졸업전시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내가 만약에 졸업하기까지 아니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쭉 완벽과 완성을 찾으려고 했다면, 지금의 나는 온갖 스트레스에 휩쓸려서 화병에 걸리고 남았을 거다. 그러면 계속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했던 과정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완벽을 찾는 것보다 정답은 아니지만 나만의 과정을 만들고 성장하는 것이 더 스스로에게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태도로 대입해 볼 가치가 있다. 각자마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의 이상향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지금의 모습보다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일 것이다. 단점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장점만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면 오는 긍정적인 요소를 기대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노력에 수많은 과정들이 존재하지만 몇몇 우리는 그 현실의 벽을 느끼고 좌절할 순간들이 있다. 노력이 어떠한들 상황이 어떠한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현실의 문턱은 높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본인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너 하나만의 그림일 테니까. 금이 비싼 이유는 가장 완벽히 빛나는 것이 아니라 금이 주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너의 그림 즉 삶에서 완벽을 찾는 것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만의 고유의 삶을 개척해 나가 보는 것을 어떨까 싶다. 네가 원하는 정답이 아니라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정답을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즐기고 행복을 느껴야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 찾아가는 과정이 너에게 행복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깨닫게 해 준다.
예술에 정답이 없듯, 삶에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과정 속에서 나만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가장 빛나는 인생은 가장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