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발생

백수의 탄생 3화

by 감정수집

백수는 아프다

인대 손상, 연골 파열, 만성 축농증, 난청, 전신마취 2번, 하반신 마취 2번, 큰 수술 3번... 죽음의 고비를 넘나든 적은 없지만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지겨우리만큼 수술대가 두렵다. 그 흔하다는 축농증 수술도 상태가 너무 심각해 뇌손상 우려 각서까지 작성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여러 번의 수술은 몸을 약해지게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불 염색하는 것이 직업인 마냥 코피 쏟던 10대 초반과 한 번도 환절기를 그냥 넘긴 적 없는 20대 초반까지, 무수히 잔병을 앓아왔다. 그나마 중3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심폐기능이나 근육들은 잘 자리 잡았지만 내장 기관들은 어찌하지 못했다. 누군가 "너는 운동을 그렇게 하면서 왜 맨날 아프냐?"라며 물으면 답한다. "그 운동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수발받고 살고 있을 거다"라며.

백수인 이유인지, 날씨 변덕이 때문인지 요즘 건강 상태의 이유를 딱히 뭐라 말하기 힘들다. 사회생활 단절도 한 몫 했을테다. 사회활동을 하는 중에는 설사 힘들더라도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들로 신체기관은 끊임없이 자극받는다. 물론 자극이 과하면 병이 되겠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감정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건 좀 나쁜 예들이었지만 다른 편으로 보면, 아침 출근길에 아름답거나 멋진 이성을 마주하면 잠시라도 설레지 않는가? 스스로는 인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세포는 활동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사람의 신경과 세포 그리고 기관들을 자극하기에 사회생활은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백수는 감정 활동이 다양하지 못하다. 편협된 감정 소모는 있지만 생동감 있는 자극으로 생각하긴 어렵다. 음식을 다소 가리는 편인데 먹기 싫은 게 아니라 소화기관 때문에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이것저것 잘 먹어야 금방 낫지 이놈아"라며 말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도중에는 정말 그렇기도 하다. 소화가 힘든 음식들을 먹어도 여기저기 치이며 살다 보면 뭘 먹었는지조차 잊으며 지나가는 경우들이 많으니 말이다. 지금, 이 백수는 원래 먹던 것도 못 먹을 만큼 나약해졌다. 그러니 살아있는 자극이 필요할 때다.


비켜가기

어떤 이들은 꼼수라고 한다. 잔머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었다. 그리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몸은 약했지만 모든 자연을 누리며 살 수 있었기에 행복한 시절로 기억한다. 문제는 중학교 시절부터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약한 몸은 괴롭힘 당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3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지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게 했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힘들어 지금까지 연락하는 중학교 친구는 단 세 명이다. 그나마도 한 명은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이유로 친해졌지 중학교 땐 친분이 없었다.

비켜 다녔다. 비켜갔다. 친구들과의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못한 삶은 비켜간 즐거움을 만들게 했다. 혼자 하는 것, 혼자 만드는 것, 혼자 책 읽는 것, 혼자 컴퓨터 하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공부에 매진했더라면 정말 잘 했으리란 착각도 한다. 혼자 하는 것들에 대한 수준이 상당했으니 말이다. 컴퓨터 다루는 것은 지금 다시 그리할 수 없을 정도 수준이었다. 비록 비켜갔지만 비켜간 자리만큼은 꿋꿋이 지켜냈다.

중학교 3학년 운동을 시작한 여름방학 당일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어디서 맞는 일은 없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일주일에 3번 이상은 16킬로를 달릴 정도로 미친 듯이 했으니까. 게다가 기계 다루는 일은 근력을 많이 상승시켜 줬기에 웬만한 친구들 3명이 달라붙어도 힘으로 밀리지 않는 정도였다. 그렇게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는 본격적인 비켜 감이 시작됐다. 그 비켜 감이 타락의 의미는 아니다. 보편적 삶의 이면에 서 있었다는 말이다. 펜을 잡는 손 보다 공구를 드는 손이 익숙해졌고, 책을 읽기보다 도면을 읽는 눈이 익숙해졌다. 그런 익숙해짐은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고 나는 그것을 맹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엔 그리 공부하기 싫었는데 지금 제일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고등학교라고 한다. 나는 당시에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그 시절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걸.

아프다는 것과 비켜간다는 것, 이런 의미다. 몸이 약해서였든 주변에 의한 것이었든, 못하는 것으로, 못하게 되어버린 것으로 낙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 비켜가는 것이다.



구불구불 새 길

10대 초반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고등학교는 나름대로 행복한 비켜 감이다. '백수는 아프다' 이 문제는 대학교 시절부터다. 나는 하나씩 잃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청각을 잃었다. 정확히 청각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난청이 생겨 조금이라도 시끄럽거나 집중이 안 될 땐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 그렇게 생긴 난청으로 노래를 들을 때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가사를 잘 못 듣는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누군가 책을 읽으면 눈과 귀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 책을 보는 도중에는 목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둘 중 하나만 집중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돌이켜 보면 학부 시절에 수업시간엔 집중 못하다 돌아와서 혼자 공부하며 깨닫는 이유가 거기에 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비켜간다. 강연을 들을 때면 누군가 말하는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일부분 만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생각과 잘 융화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강의를 들을 때면 꼭 중요한 것들만 기록한 뒤 돌아와 다시 학습한다.

두 번째 잃었던 것은 무언가 간절히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된 아쉬움이다. 여자 친구가 생긴 지 한 달 채 안된 시기 축농증 수술로 두 달 정도 못 만나게 된 적이 있다. 20대, 얼마나 사랑에 불타는 시기인가? 그 두 달은 너무 길었다. 3주 정도의 초반에도 매일 만났었는데, 두 달 동안의 그 폭발하는 감정을 어찌 참아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일렁이는 감정을 연인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어긋났다. 그 어긋남이 서른 초반까지도 감정 표현을 서툴게 했고, 여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지금에야 적절히 비켜가는 나만의 방법이 있지만 20대 시절의 연애는 흑역사다.

세 번째는 음식이다. 지금이야 소화기관 때문에 못 먹는 게 있지만, 운동 좋아하던 시절 뭘 못 먹을까? 대학교 당시 활동하던 동아리에서는 매일 저녁 문 앞에 빈 술병을 짝으로 쌓았고, 식당에 가면 밑반찬에만 기본 두 공기였다. 그 즐거움들을 빼앗은 것은 학부 때부터 시작한 실험실 생활이다. 공고를 나와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기에 무리해서 공부했고, 실험실 생활은 햇살을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몸을 혹사시켰다. 2년이라면 긴 시간은 아니지만 태어나길 약하게 태어난 몸이라 망가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또 비켜가야 했다. 술은 그나마 무리 없는 막걸리로, 자극적인 음식보다 건강식으로.

네 번째는 운동이다. 이제는 운동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대학교 생활 도중 운동을 진로로 고민한 적도 있었다. 지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6년 전 운동 도중 연골이 파열된 일 때문이다. 너무 무리했으니 그렇겠지라며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연골 수술 후 의사 소견이, 이미 예전에 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진 걸 모르고 그냥 지난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느슨히 붙어있다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그냥 둬도 괜찮다곤 했지만 무리한 운동은 삼가라고 했다. 그렇게 운동적 쾌락도 빼앗겼다. 그나마 20~30분 정도는 무릎 근육이 연골에 무리를 주지 않는 시간이라고 하니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비켜갈 수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운동이 족구다. 수술 전에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운동과 함께 했다면 지금은 가볍게 뛰는 것 외엔 족구만 한다.

구구절절 수술 이야기만 써도 한참이라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요즘 빼앗긴 것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성대결절이 심해져 이제는 노래도 못하게 됐다. 노래를 많이 불러 그리된 것은 아니다. 백수생활로 약해진 몸과 지나치게 건조한 잠자리가 성대 출혈을 일으키는 바람에 발생했는데 그 정도가 좀 심한 모양이다. 의사들이 대게 과장되게 말한다지만 며칠 동안 목이 이리 아픈 걸 보면 심상치 않음은 분명하다.

분하다. 사실 많이 분했다. 뭔가 열심히 해보려 하면 항상 빼앗겼다. 더 분한 건 나에게 그것을 빼앗아 간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원망할 대상이 없는 원망은 그리도 서글펐다. 다행인 건 그리 주저앉지 않았다. 집도, 밥 먹을 돈도 없던 학부시절도 단 한 번의 타락 없이 이겨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있던 비켜가는 방법이 있던 것이다. 누군가는 곧은길을 편안히 걷겠지만 나는 매번 눈앞의 큰 바위를 돌아 구불구불 걷더라도 새 길을 걸으며 살아왔다.


장르의 발생

혹시 내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혹시 우리 집이 잘 살았더라면 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설사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난 지금이다. 내 삶은 지금 가장 빛난다. 구불구불 돌아왔지만 나만 가진 길이다. 비록 사회적 명예가 높거나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진 않더라도 지금 내 자체는 세상에 오직 하나다. 이런 경험 이런 인생을 겪은 사람은 나 하나다. 누군가 보다 더 힘든 삶도, 누군가 보다 더 열심히 살았던 인생도 아니지만 그 중간 어디쯤 내 길을 개척한 내가 나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다. 읽지 않았다. 책 제목이 싫다. 진짜 아파본 사람은 그따위 말 인정하지 않는다. 진짜 아프다는 것은 또 뭔가? 이런 느낌이려나? 황량한 갈대밭에 단 한줄기 갈대만이 온갖 바람에 휘청이며 서 있는 그런 느낌이려나? 나는 그런 느낌을 수 없이 받아왔다. 거센 바람에 같이 뉘어주는 주변 갈대 없이 거친 사막 모래바람을 혼자 맞으며 살아왔다. 그런 고독함과 외로움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끝없이 세상 속으로 밀쳐내며 버텨왔다.

그러이 만들어낸 구불구불한 길이 이제 새로운 장르를 발생시키려 한다. 그래서 지난 내 인생이 좋다. 누구는 보지 않으려는 것, 외면하는 곳, 모르는 것, 인정하지 않는 것.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겪고 지난온 길인데 이제는 그 길이 내 미래의 토대가 될 차례인 것 같다.

요즘 아이돌을 욕하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 아이돌 문화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수많은 비평들이 쏟아졌는데 "저것도 노래라고"라는 말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나도 그랬었고. 내 경우,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것이,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나쁜 일도 아닌 것에 험한 소리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당연히 베타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 베타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면 세상에 존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화폐라는 것조차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게 아니니. 그러니까 비켜가야 한다는 말이다. 비켜가야 한다. 나쁜 바위들, 나쁜 존재들을 비켜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내야 한다.

백수의 생활의 종착점은 비켜 감으로 발생시킨 나만의 장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어쩌면 그러려고 백수를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빼앗긴 것들이 비켜가는 것을 숙달시켰든 원래 그런 성격이라 잘 비켜 다녔든 그런 것은 지금 중요치 않다. 아파서 성장한 것인지 원래 그런 성격인지 모를 일이고, 정말 아프다는 것 또한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지금, 백수로서 바라는 것은 개척이다. 삶, 인생이라는 자체가 맞닥뜨린 거대한 산을 비켜 내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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