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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Feb 07. 2020

어린 나, 어른 나

#097_상상

한 해 딱 두 번 고향을 향한다. 설 그리고 추석. 예년 대로라면 반년만에 맞았을 풍경이지만, 이번엔 1년 만에 한적한 흙냄새를 맡는다. 지난 설에 버스 예매 오전 오후 시간을 헷갈린 덕분이다. 다음날 일찍 출발할랬지만 일출 보러 가는 관광객들로 이미 매진 상태라 포기했었다.


1년 만에 맡는 냄새여서 그랬을까? 아주 미묘한 감정이 솟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씩 찌르는 듯 한 시골 냄새들, 그런 향들과 어린날의 모습이 겹쳤다. 물비린내 맡으며 물고기 잡던 모습, 벼 비비는 소리 들으며 논두렁에서 냉이 캐던 모습, 누가 잡히고 누가 잡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내달리던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 속의 나.


아이들 속에서 누구보다 해맑게 웃는 나. 어른 나는 회상 속에서 어린 나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 하니?"


"빠르게 뛰어가면 저기 앞에 산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게 그렇게 궁금한 거야?"


"응. 그리고 그 산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 음... 분명 신기한 게 많을 거야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내 아지트를 만들고 싶어."


"거기서 뭐하려고?"


"강아지도 키우고, 보물들도 숨겨두고, 아무도 모르게 과자도 먹을 거야."


어린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 어른 나는 어린 나를 회상하며 멋쩍은 미소만 입꼬리에 남긴다. 엉뚱한 생각 가득했던 나도 이젠 상상보다 회상이 많다. 울퉁불퉁 흙길, 딛기 좋은 곳 골라 세차게 달리던 어린 나에겐 미래로 향했던 길인데, 어른 나에겐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차례 세찬 바람이 벼를 누비니, 왠지 모를 뭉클함이 닥쳤다. 


"저기 산까지 같이 달려볼까?"


"응!"


어른 나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달린다. 얼마 못가 지치더라도, 달리는 순간만큼은 즐거우리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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