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매년 봄 나를 괴롭히는 것

by 감정수집

건조한 공허감이 주체할 수 없이 밀어닥치는 시기는 딱 이맘때쯤, 일교차가 극에 달하는 봄의 초입이다. 많은 이들에겐 가벼워진 복장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펴기 시작하는 시기지만, 계절의 풍파를 피할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신체와 정신 모두 혼란스럽다. 이걸 두고 예민해서 그렇다는 말을 간혹 듣는데 엄연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가파른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신체' 때문에 발생하는 육체적 변화의 문제이다. 한데 나의 예민함으로 뒤집어 씌우는 사람을 마주하노라면 나는 한층 더 예민해진다.


그날도 낮과 밤의 날씨 차에 적응하지 못한 문제인지 어깨 언저리로 어둠이 스몄다. 잘 시간이 넘었지만 공허함에 굽어지는 어깨 때문에 얼른 옷을 걸치고 밖을 향했다. 천을 따라 걸었다. 20분쯤 걸었을까. 천의 시작점에 서서 쭉 늘어선 천의 소실점을 보자니 무심결에 한 마디 튀어나왔다.


"결국 혼자구나."


소실점은 끝이 없다. 아무리 빨라도 도착하기도 전에 나를 앞선다. 그 날의 감정은 아마 좌절감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2018년 쯤이었던가, 처음 그 감정을 느꼈을 땐 발버둥 쳤다. 허우적 대고, 한 발이라도 빼보려 안간힘을 썼다. 회피였을거다. 빠져나오려는 노력이라기 보단 외면하고 도망치려던 것이었을 테다.


영화 겟 아웃에서 주인공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듯이 그런 느낌이었다. 내 심연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몇 달 동안이나 헤어 나오지 못한 경험도 있지만, 지금은 길어야 하루 정도다. 그 날은 반나절 정도였을까. 외롭다거나 쓸쓸해서 닥친 슬픔은 아니다. 외로움은 사람들을 만나 해소할 수 있고, 쓸쓸함은 취미생활로 뒤덮을 수 있다. 하지만 심연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주변인을 끌어들이는 건 희생자를 늘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활동적으로 공허함을 쫒아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고요히 마주한다. 눈을 감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당시에는 어땠을지 기억 안 나지만 그때의 기억을 지금의 감정으로 되짚으며 구멍 뚫린 심장을 메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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