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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기 Dec 06. 2021

잃어버린 나만의 공간

나만의, 개인적인 등이 말머리에 붙으면 조용하거나 안락한 공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나는 무언가 마구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한다. 딱 집어 꼽으라면 전시회랄까. 전시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취직 후부터다. 훨씬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학창 시절엔 일이만 원도 아쉽던 터라 돈 여유가 생기고서야 다니게 됐다. 처음엔 박람회 위주였다. 10년 전쯤이었을까. 처음엔 기계 쪽 산업 박람회가 많았지만, 해가 지날수록 프랜차이즈, 건축, 스포츠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양한 분야로 견문을 넓히게 됐고, 나름대로 트렌드를 읽어낼 관찰력도 쌓게 됐다. 


박람회는 생각보다 빨리 질리게 됐는데, 분야가 비슷한 박람회는 거의 비슷한 기업들이 나오는 이유였다. 아주 면밀히 보자면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대부분 우려먹기 식이다. 그렇게 2년쯤 지날 무렵부터 전시회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시회는 입장 전에 공부를 좀 했다. 주로 그림이나 설치미술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가면 아깝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지적 욕심이 있는지라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전시장은 안락했다. 몸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정신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니 몸도 긴장이 녹아내리기까지 한다는 말이다. 몸의 긴장이 풀리니 두뇌는 활성화되는 기분이었는데, 측정하는 장치가 있다면 분명 뉴런이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이트를 얻으려 전시회에 간다고들 한다. 한데, 딱히 그것을 증명하진 못한다. 설사 진정 그렇다고 해도 그 현상을 설명하는 건 꽤나 어렵다. 나는 인사이트라기 보단 새로움이라 표현하고 싶은데, 어쨌거나 나 역시 설명은 힘들지만 굳이 설명해 보면, 박람회는 고작 몇 년의 흐름밖에 읽을 수 없었다. 읽을 수나 있었을까 싶다. 겨우 그 시기 잘 팔리는, 잘 나가는 기술을 아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러니 그걸 통해 내다볼 수 있는 미래도 한계가 보였다. 나는 동해안의 해류를 짐작해 보고 싶은데, 한강 정도 보는 수준이랄까. 전시회 나름이겠지만 내가 느낀 평균으로 보자면, 전시회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역사의 길이와 폭이 상대적으로 길고 넓다. 당연히 박람회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의도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겠지만.


그동안 전시회를 나만의 공간이라기 보단 그저 취미 중 하나로 생각했다. 취미라는 건 흠뻑 매료될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끊어낼 수도 있잖은가. 코로나 시기를 지나는 지금 다시 바라보니, 내게 전시회가 단순히 취미는 아닌 듯하다. 뻔한 표현으로 쓰자면 마음의 고향 같은 거랄까. 어떤 전시회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볼 수 조차 없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으니까. 몸은 분주하게 이리저리 치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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