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꽤나 혼란했던 2018년. 상위 중에서도 상위급 신체검사 결과와 이상 없음의 진단에도, 일주일에 무려 10킬로나 빠졌던 한 여름. 잊지 못할 오한과 몸살은 아직 까지도 때때로 찾아온다.
"심하면 정신과를 가보는 게 좋겠네요."라는 소견에도 혼자 버티던 이유는 선입견 때문일 터. 매번 다른 일을 처리해야 함에 정신이 몽롱해서는 먹고 살길이 막힐 거라는 두려움은 억지스럽게 나를 버티도록 만들었다.
어떻게든 이겨보려 해 본 것은 열 가지 정도일까.
술 먹고 울기.
혼자 만취하기.
클럽 가기.
그냥 울기.
멍 때리기.
글쓰기.
책 읽기.
산책하기.
전시회 가기.
친구 만나기.
어머니와 통화하기.
...
그리고 도대체 이게 뭔지 죽어라 파보기.
당장의 효과가 뚜렷했던 건 술 먹고 클럽 가거나 우는 것. 다음날 효과가 좋았던 건 그냥 울거나 책 읽는 것. 장기적으로 효과가 좋았던 건 글쓰기, 어머니와 통화하기.
술 마시는 건 당장은 좋지만 장기적으로 점점 더 안 좋아지는 원인이 된다. 반대로 도대체 이게 뭔지 죽어라 파는 건 당장은 힘들지만 장기적으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좋아 하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생각이 깊을수록 부정적인 성향은 더욱. 부정적이고 싶어서 부정적이기보단 고유적인 것이라 생각하기에 괜한 방법으로 더 힘들어지면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또 하나 추천 하지 않는 건 친구 만나기다. "감정 쓰레기통"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여차 저차 해도 감정은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기에 무언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제일 추천하는 건 울기, 글쓰기, 산책하기, 전시회 가기 정도. 울면 당장 마음이 꽤 개운하다. 글을 쓰면 내면의 어둠을 뱉어 낼 수 있다. 산책과 전시회는 가벼운 신체활동이 수반되기에 마음을 정화하기 좋았다. 단, 글을 쓴다면 쓴 글을 다시 읽지는 말자. 간혹 내가 쓴 글을 읽으며 그 지독한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니까.
나는 탄력성이 꽤나 좋다. 사람들은 내가 타격이 별로 없는 사람인 줄 알지만 쉽게 타격을 받아도 금세 회복해서 티가 안 난다. 타고나길 그런 성향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되고 싶어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아직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길게 일주일까지도 힘들다. 그럴 때 되뇌이는 문장이 있는데 '내가 내 어둠에 잡아먹히지 말자'라는 말이다. 내면의 악마는 누가 만들어 준 게 아니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어둠 역시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악마를 만들어 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다면. 무엇으로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