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 Dec 21. 2018

그때는

그때는


#1


  문득 누군가의 손을 꽉 부여잡고픈 심경이 스칠 때가 있진 않으신지요. 그녀는 그때 그랬나 봅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그의 묘 앞에서 붙잡은 그녀의 손은 참 억셌다. 억셌지만 앙상했다. 손가락에 뼈마디 위 가죽만 간신히 얹은 듯한 모양새였으니. 6.25에 참전한 하사의 자격으로, 수만여 무공이 안치된 언덕에, 세월이 무상하게도 묵묵히 누워있는 어느 폭군의 여인으로서. 요란한 생을 지나 홀로 하직한 원망스런 낭군을 앞에 둔 채 홀로 서있는 외할머니는 그저 하나님, 오 하나님. 그날 마주 잡은 그녀의 손은 참으로 억셌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 하릴없이 부여잡은 손자의 두 손에 어떤 믿음을 실었는지는 몰라도.


  가끔 어머니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뺑소니 피해자였고, 한편 여섯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렇기에 주정뱅이였고, 집구석에선 폭군이었다. 서너 시쯤 밭일을 마치고는 막걸리 한 사발 축이러 가는 일이 그의 유일한 낙이였다. 그런 낙마저 외발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나. 막걸리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외발 불구라는 업신도 덩달아 넘실거렸다는 것은. 그저 허허하고 웃어넘기지만 분명 진득하니 서러울 터. 술이 핑계가 되어 있는 마음 없는 마음 게워내어 온갖 삿대질을 하였을 것이다.


  거나하게 취하는 것은 초저녁쯤, 이쯤 되면 누군가 집으로 찾아올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날마다 6시 언저리엔 누군가 찾아와 아버지 취했으니 모셔가라 했다더라. 그때가 되면 엄마나 이모들은 리어카를 끌고 잰걸음으로 주막으로 향했다. 다리를 잃은 탓에 제 발로 걸어갈 순 없으니. 제 아버지 들쳐 메고 힘겨이 모셔오는 리어카 위에서 외할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원망스러웠을까. 앞뒤 가릴 것 없이 목발로 이리저리 때리고 세상 울분을 토했다 하더라. 집에 와서도 성이 풀리지 않아 이모저모 향하는 주먹질에, 외할머니는 머리를 푹 들이밀며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더라. 행여 피해버리면 주먹은 제 자식을 향할 걸 알기에.


  외할머니는 마음이 따스한 분이셨다. 어디 큰 잔칫집 가게 되면 자식들 맛보라고 치마폭에 사탕을 담아오는 분이셨다. 땀 흘려 밭일을 하시고 나서는 탐스런 복숭아 한 소쿠리 담아와 자식들 입에 떠멕이곤 했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어머니께 복숭아를 따다 주시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물었단다.


'엄마, 엄마도 꽃을 보면 설레나?'


'암 그라모, 엄마도 설레지.'


  한창 사춘기였을 어머니는 그게 그렇게 놀라웠단다.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도 소녀였다더라. 그리고 하릴없이 손자의 손을 꽉 잡은 그날도 외할머니는 운명 앞에 무력히 서있는 소녀였을 것이다.



#2


  마침 주말에 시간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왔다. 간만에 어머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낄낄대던 중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어머니의 표정은 딱딱하게 뭉뚱그려졌다. 외할머니가 고비라더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더라. 자식들 따스해라 태양을 짊어지던 외할머니의 얼굴엔 역광으로 까맣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에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외가로 향했다. 길은 매양 지나던 길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한 번 더 굽이쳐 댁이 아닌 병원을 향했다. 국밥집 뒤쪽 주차장에 날래 주차를 하고 덜컥 문을 박차고 들어선 요양병원의 행색이 퍽이나 남루하여 애석하다. 그곳에서 마주한 외할머니의 손은 억세긴커녕 까딱도 못하였고, 무슨 문장이 혀끝에 맺혀있는지 옴싹 움직이는 혓바닥으로 세상 모든 대답을 하였다. 눈 뜨는 일도 무거워 온 세상을 들어 올리듯 눈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잠드셨다.


  외할머니는 못 박힌 예수처럼 십자가 대신 침대에 누워 어떤 꿈속을 쏘다니는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처녀시절 비로도 한복 입고 성경책 한쪽에 끼고 거닐던 잘 살던 집 딸내미가, 재혼까지 하며 손마디 부르트게 고생을 하더니, 마침내 어떤 구원을 청할 요량이었나요. 신앙도 없는 내가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어떠한 믿음으로 누구께 기도하리 고민할 새, 간호사가 비집고 와 외할머니의 혈압을 쟀다. 능숙하게 오른팔에 커프를 감았다. 헌데 옷이 두꺼웠나, 커프가 덜 감겼었나, 피부에 얼룩진 검버섯마냥 가까스로 매달린 생(生)이 문제였을까.


'맥이 잘 안 뛰나?'라는 말에


  문득 삼라만상이 고요하다. 간호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무슨 계시라도 된 양 온 가족이 덜컥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고는. 반대쪽 팔에서 다시 혈압을 재는 찰나에는, 세상에 단 하나의 소리만 남은 듯 혈압기 소리만 슉슉대었고, 온 가족은 숨죽여 귓바퀴 들이밀고 있었다. 고작 펌프질하는 행위가 무어라고. 도대체.


  맥이 뛴다는 말에 밀려오는 안도감과 안도감 때문에 다시금 밀려온 생(生)의 우환. 농도 짙은 공기에 돌연 목이 메어 복도로 나섰다. 이리저리 무거운 공기가 등 떠미는 대로 거닐던 내가 찾던 것은 무엇이었나. 어떠한 구원이었나. 아니면 명멸하는 생을 직시할 담력이던가.



#3


  올해 처음으로 입김이 새어 나오는 새벽, 외할머니는 임종을 맞으셨다. 죽음의 잔향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드리운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들은 장례식으로 향하였다. 장례식장에는 죽음의 문턱 앞에 경계 섰지만 하릴없이 무력했던 빈 초소의 보초병들이 모여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그곳에서 만난 어머니는 기실 그리 오랜만은 아니었건만 퍽 오랜만이었다. 그렇기에 반가울 얼굴이었지만 패잔병들의 조우가 반가울 수 있을 리가. 그저 손을 마주 잡는 것 밖에는.


  오십이면 백의 절반이니 많기도 하다 싶었다가도 거진 절반쯤 지나쳐와 보니 턱없이 짧은가 싶기도 합니다. 중학생 즈음 나는 오십에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늙고 병에 곪아 죽지 않고 멋드러지게 죽고 싶은 생각에. 딱 오십은 아닐지어도 오십 대 어느 길목 즈음에선 그러리라 했다. 아직 살아갈 나날들이 더 많은 나이이지만 서도, 철없이 용감했던 나는 이제 한없이도 죽음이 무섭습니다.


  때맞춰 시작된 염습에, 고인을 염하는 행동이 너무도 능숙하여 서글프다. 잘 준비된 동작과 사뭇 다르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우리네 모습 때문에. 쉰의 죽음 앞에서 마저 용감하리라 했건만, 아흔의 생 마저 입김에 흩어지는 순간이 서럽다. 좁은 등어리로 누워있던 세상의 빈 영토가 허무하다. 사는 것이란 이별의 과정이라지만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더미가 서운하다. 이젠 혹자가 멋드러지게 죽고프냐 묻는다면, 아이고 오래오래만 살게 해 주십시오, 할 테지요.


  오십. 비록 죽을 나이는 아니건만, 오십은 죽음과 살갗을 맞닿고 있다. 영원할 수 없는 것이 생이라, 별루(別淚)는 오십에게 능청스레 찾아오기에. 오십이란 죽을 나이가 아닌 죽음을 마주하는 나이. 오십의 업은 귀천이 아니라 석별이다. 운명(殞命)에 다다른 소녀에게 석별의 인사를 건넬 운명(運命) 앞에 있는, 또 하나의 소녀, 내 손 꼭 잡은 어머니는 어떤 기도를 하였을까.


  어떠한 것도 구원하리라는 믿음이었을까. 아니면 어떠한 것도 마주 볼 수 있다는 용기였을까. 그렇다면 나의 어머니가 스러질 때가 오면 나는 그때는.


18.11.25

매거진의 이전글 낮은 고도의 태양 아래, 안개꽃을 머리에 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