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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Dec 23. 2018

사람 향기

사람 향기


#1.

 어느 미끄러운 겨울, 나는 한 발달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정신지체 환우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학기간 동안 진행되는 계절학교 프로그램을 돕는 일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대부분. 대개 의사소통은 가능했으며 거진 절반쯤은 말하는 바도 척척 알아들었다. 몇몇 머리 굵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친구들을 인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절학교 프로그램은 겪어본 봉사활동 중 꽤나 고된 편이었다. 휠체어를 탄 아이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고,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아이를 제지하기도 했으며, 낯선 여자에게 달려들어 안기려는 아이도 있었다. 개중 가장 힘든 것은 감정. 내 감정을 쓰다듬는 일이었다.


 연탄을 나르거나 물건을 옮긴다던지, 청소를 하거나 강의를 하는 봉사활동은 한 몸 고생하면 훌쩍 시간이 지나있곤 했는데, 아이들과 치대는 일은 썩 편한 일만은 아니더라. 날이 갈수록 아이들과 서먹함을 걷어내긴 하였건만, 아이가 봉사자들에게 집착하고 사적으로 연락을 갈구하는 사건이 많았던 터라, 따로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SNS로 친구 맺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 기준 아래서 어느 정도는 나도 선을 긋고 아이들을 대했을 수도. 혹은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다 생각했을 수도.


 아침마다 복지관 문을 들어설 때마다 우리를 반겨주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목이 빠져라 기다린 제 부모들 손에 아이들을 쥐어 돌려보내면서, 보람찬 마음이 솟구쳤던 것은 당당히 말할 수 있으나 이 일을 업으로 하라 하면 손사래 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삼 존경스러운 심경이 스쳤다. 환우들을 사시사철 마주하는 직원들과 그들의 발자취를 쫓을 사회복지과 학생들. 그들에선 사람 냄새가 났다. 그들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가 부러웠다. 그들이 행하는 업을 단 몇 주간 해보는 동안에도 나는 끝나는 날을 손꼽았으므로.



#2.


 여느 노동들이 그렇듯 계절학교의 마지막 날 뒤풀이를 가졌다. 나는 같이 봉사한 친구들 중 그나마 그 사람들과 말을 텄던 터라, 우리들 중 대표인 양 늦게나마 뒤풀이에 참석했다. 존경스러운 우상들과 하나의 우인이 합석하는 풍경이라. 위인들을 마주함을 낯부끄러워하며 문을 열었다.

 허나 술이 진득허니 들어갔던 탓인가. 그들의 농담은 아이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눌한 말투, 아이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문장, 아이의 어떤 손짓을 약간 더 괴랄하게 표현한 제스처. 삽시간에 나의 존경은 갈피를 잃었다. 그렇다. 그곳에선 사람 향기가 아닌 사람 냄새가 났다. 사람 냄새가. 일단에 존경은 허룩해졌지만 끝내 한마디 버럭 소리치지 못한 채 먼저 자리를 떴다.

‘즐거웠습니다. 막차시간이 되어서요.’ 비겁하게도.


 비틀대며 정류장에 도달하니 막차시간은 간발의 차로 지나쳐있었다. 손바닥을 휘적휘적 흔들어 택시를 잡아 타고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입 뻥끗하지 못하고 술을 들이켠 탓인지 명치 언저리가 메스꺼웠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가로수에 대가리를 처박고 토악질을 했다. 허나 구태여 몸을 숙여 토악질을 하였건만 내가 외친 것은 헛구역질 뿐이었다. 굳이 게워낼 것 없는 내 속도 그들과 마땅히 다르지 않았기에.


 나는 나의 빈 속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민과 동정은 교만하기 짝이 없고, 가식은 역겹다. 그렇다고 양보도 아닌듯하고, 배려라기엔 무언가 사람 냄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나는.


 봉사를 하던 중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마냥 행복해 보이는데, 차라리 이 아이들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 돌이켜 보건대 우매함을 너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장애를 가진 덕분이 아닐 건데. 봉사 중에 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자 다른 아이가 나서서 지켜줬다더라 하는. 멀지 않은 지하철역을 향하는 순간에도 그 아이들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이들에게선 사람 향기가 났다. 아마도 사람 향기가 아이들을 행복케 했으리라.



#3.


 사실 날 잘 따르던 한 아이에게 SNS 계정을 알려줬었다. 마지못해 알려주긴 했지만 서도. 그 아이에게 근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는 졸업을 했다더라. 어디 요식기 세척업체에 취업을 해서 지내고 있다더라. 아직 연애는 못하고 있다더라. 여하튼 잘 지내고 있다더라.


 오랜만에 연락 온 아이에게 굳이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을 하진 않았었다. 아직 내게서는 그다지 사람 향기를 맡을 수 없었기에. 반가움이 절반, 내가 쉬이 뱉는 말이 두려운 것이 절반. 무어라 해야 할지 몰라 어찌어찌 연락을 마무리하였다.


 다시 시간이 일 년쯤 더 흘러 먼저 그 아이에게 연락을 했다. 잘 지내냐는 말에 나중에 한 번 보잔다. 아직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더라.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꽤나 듬직해진 것이 느껴진다. 나도 용기를 내어 한 번 만나보련다. 한 해가 더 지나 졸업을 눈앞에 둔 지금, 나에게도 약간은 사람 향기가 묻어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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