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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Aug 28. 2022

세 가지 전시회에 대한 단상

[세 가지 전시회에 대한 단상]


시간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흘려보낸다. 잠깐의 순간을 주먹에 쥔 채. 사진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순간을 포착하여 전시하는 것, 그리하여 찰나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콜렉션>은 스스로 설명이 가능한 사진들, 그러니까 그 자체로 온전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기록한 사진들을 전시한다. 예컨대 허블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허블, 인류가 달에 발디딘 순간, 혹은 인간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들 그리고 유희의 순간들. 한편 전쟁의 상처와 그림자까지도. 포착된 순간은 시대와 세계를 넘어 프레임 밖으로 전달된다.


이 같은 클래식은 보편적인 의지와 신념을 내재한다. 전시회의 마지막에 만나는 <천국 정원으로의 산책>(The Walk to Paradise Garden)은 전쟁 후 붕괴되어버린 휴머니즘을 재건설하기 위한 믿음, 다시 살아가야 할 의지를 두 아이의 뒷모습에서 찾는다.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콜렉션>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 잊지 않아야할 사건들, 그로써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 나가는 전시회이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다소 다르다. 비비안 마이어의 시선에 포착된 인물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익명으로 남는다. 장소 역시 미상인 경우가 잦다. 말하자면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콜렉션>이 보편적, 공적인 작품들이라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전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프레임에 담지 않는다. 시카고의 아폴로 15호 귀환 환영 퍼레이드에서조차 비행사보다 구경꾼들의 다양한 몸짓에 관심을 가지며,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오히려 비비안 마이어는 기억하기보다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눈과 눈, 얼굴과 카메라가 맞닿는 순간. 그러니까 피사체와 나란히 마주하는 순간들을 통해 그녀는 세상과 관계 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들은 스스로에게도 향한다.


따라서 그녀의 자화상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며 그녀가 바라본 피사체들은 피사체로 존재하기보다 그녀의 시선이며 시선과의 연결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진은 그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 무언가 비어있고 잘려있고 그러므로 상상해야 한다. 절단되고 남겨진 부분을 통해 전체를 상상하며, 그림자를 통하여 실체를 추측하고, 투영과 반사, 착시와 변형을 통하여 인물과 사물의 목적이나 목표가 아닌 한순간의 질감, 형태, 볼륨을 응축된 시간에 담아낸다. 이렇게 그녀는 기술된 사실이 아닌 익명의 인물들로 창조된 도시를 재구성한다.


그렇다면 상상은 어느 곳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또 상상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사진과 영화는 카메라를 경유한 예술이기에 매우 유사해 보인다. 허나 사진은 대개 인내의 시간 혹은 우연의 순간에 실제를 포착한 결과라면 영화는 철저하게 창조된 가상이다. 즉 영화는 본질적으로 상상에 기초한다.


한때 팀 버튼의 상상력을 사랑한 적이 있다. 관습적인 상상을 해체하여 음울하면서고 해학이 살아있는 기묘한 분위기. 그럼에도 차디찬 흰 눈이 자아내는 포근함을 가진 시선들. 팀 버튼이 사랑한 괴물들은 괴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든다. <팀 버튼 특별전>은 러한 그의 상상을 담는다. 유년 시절의 팀 버튼을 되짚으면서 개인의 삶이 상상에 반영되는 현상을 응시한다. 관계를 통하여 소통하는 비비안 마이어와는 사뭇 다르게, 팀 버튼은 부유하는 상상을 낚아채 영화로 표현해 내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달라고 말하고 있다.


전시展示, 글자 그대로 펴서 보이는 행위. 기억해야 할 순간들을 박제하여 되새기는 일, 빛나는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 위대한 상상의 기원을 되짚어보는 일. 모두 아름답고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다. 보야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콜렉션> MUSEUM 209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그라운드시소 성수
<팀 버튼 특별전 > 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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