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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Jan 02. 2023

[영화 에세이] #22.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영화의 목적이 관객을 객관화시키는 것인지 혹은 관객을 서사에 동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따른다. 어떤 영화는 컷과 컷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을 영화적 어법으로 봉합하여 구축한 환영의 세계를 실재(實在)로 포섭하기도 하며, 다른 영화는 영화적 어법을 비틀어내며 낯설게 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영화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이 어디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현대영화에서 영화를 체험하며 인물과 동일시되는 경험은 주목해야 할 관점이다. ‘이음매 없음’으로 디제시스를 구축하는 행위를 넘어 4DX로 시청각적 정보 외 체험을 선사하거나, IMAX를 통하여 입체적인 관람환경을 구축하는 등 경험과 감각을 주입하는 시도는 분명 존재하며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인물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독특하다. 영화는 시각장애인이자, 반신마비인 야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우리를 야코의 시각으로 몰아넣는다.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 테다. 82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에는 야코의 시점 쇼트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야코의 시점을 빌려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며, 후천적으로 시력 악화가 진행된 야코처럼, 본 영화를 관람하면서 야코와 비슷한 경험을 제공받을 뿐이다.    

  

 야코의 세계는 영화의 세계이다.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가 방 한편에 영화를 전시해놓은 이유는 그것들을 본 이들이 야코가 누구인지 알게끔 하기 위함이며, 주위 인물들을 영화 속 등장인물과 연관 지어 그들과 관계 맺고 이해한다. 이는 시각이 결여된 그의 세계에서 야코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론이자,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을 찾아온 당신들이 야코의 시각을 제공받아 영화를 약탈당하였을 때, 당신들은 어떻게 영화를 포착해나갈 수 있는가.


 영화는 관객이 야코의 서사에 온전히 동화되기를 바라지 않는 듯하다. 내화면은 야코의 신체를 이탈하지 않으며 마스터 숏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박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일관하며 영화적 시공간을 파악하는 것을 불가하게 하고, 컷과 컷 사이에 미묘한 도약은 비연속성을 내포하며 균열을 자아낸다. 요컨대 블러(blur) 처리된 화면은 야코와 동일시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파악하는 행위를 저지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시선은 야코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야코와 대치되는 시선이며, 그를 이해하려는 행위는 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긴장은 영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이완되지 못하며 지속된다.  

   

 야코의 목적이자 영화의 목적은 시르파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야코의 서사에 탑승하려는 우리의 목적지도 시르파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결국 야코를 배신하게 된다. 흐릿한 화면으로 오직 야코만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엔딩에 이르러 시르파의 얼굴을 뚜렷하게 담아낸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시선은 더 이상 야코의 시선과 오버랩되지 못하며, 야코가 시르파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점자로 이해하는 동안 우리는 병마에 시달린 그녀의 얼굴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서는 우리는 야코와 합치되지 못하고 우리의 시각을 돌려받은 채 영화관을 나설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시각적 체험은 인물들의 삶이 결코 온전히 체험될 수 없음을 고하는 체험이다. 야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하며, 우리는 영화 내 존재하는 사태들을 온전히 포착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혹여 체험이 이해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인물과 동일시된다는 감각이 착각이고 기만이었다면, 오히려 이러한 불완전한 체험이, 혹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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