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 Mar 05. 2023

골목에 대하여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행旅行과 관광觀光은 다르다. 관광이 빛나는 것들을 바라보기 위한 여정. 국가가, 도시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들을 위한 행동이라면, 여행이라는 활자가 풍기는 내음은 사뭇 다르다.


지역의 명소로 향하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뾰족한 팻말로 지도에 아로새겨져 있으며, 숲처럼 드리운 표지판들이 종용하듯 우리를 안내한다. 허나 관광이 아닌 여행으로 어느 마을을 방문한다면 그들이 내색하지 않는 무언가가 궁금해지곤 한다.


내가 들춰보고 싶은 또 다른 것은 골목이다.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로 나가, 퇴근 후에는 연인과 가족들과 저녁을 보내며, 하굣길에는 빙수 가게에 들러 재잘재잘 떠든다. 누구는 다리를 절며 아이들의 간식을 사 들고 가며, 누구는 거나하게 취해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누구는 아이와 산책을 나온 절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골목은 지도에 텅 빈 공간으로 존재하는, 그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동空洞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는 곳과 사람이 사는 곳이 만나는 경계이며, 그 틈에서 피어나는 생활이 흩날리는 곳.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골목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으며 그곳에 묻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 골목은 공동共同이다. 골목을 걸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이방인이 되고, 그들이 되며, 다시 우리로 돌아온다. 그들과 그들의 삶, 그들과 우리의 삶, 우리와 우리의 삶이 중첩되고 공명하는 곳, 골목. 그리하여 명소로 향하는 발걸음과 시간과 소음은 모두 여행이 되고, 표지판에 눌러붙은 관광지까지의 몇백 미터의 거리는 그저 비어있는 간격이 아닌, 그들의 혹은 우리네 생활이 담긴 도로가 된다.


여행을 하며 지나치는 순간들을 조금 담아왔다. 도로와 골목, 버스와 오토바이와 자전거. 눅눅한 정취가 퍽 마음에 든다. 結.


타이페이, 대만
매거진의 이전글 다비드 자맹: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