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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Mar 21. 2023

길가에서 마주쳐버린

[길가에서 마주쳐버린]



길을 지나치다가 모자 하나를 보았다. 신사가 쓰는 듯하기엔 약간 작아 보이고, 마술사가 쓰는 모자라고 생각하기엔 다소 아기자기한 모자였다. 어느 바람을 타고 날아온 건지, 괜스레 어울리지 않는 길바닥에 사뿐한 모자에게 다가갔다.

몇 걸음 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 모자가 아니구나. 그저 쓰레기였구나. 누군가 내팽개쳐놓은 배달음식 그릇들이 뒤엉켜있을 뿐이었다.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쓰임새도 있을 것 같은 무언가. 누군가는 소중히 다뤘을 법한 무언가. 못해도 버려지거나 내팽개쳐지거나, 놓여있는 것으로 잘못이 되지는 않을 정도의 어떤 것. 그 정도는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쓸모없는 것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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