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일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개발자의 본색은 무엇일까요? 색깔로 비유하면, 어떤 색깔일까요?
모든 좋은 것을 싸그리 묻어버리고 프로젝트를 이슈와 버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진흙탕 색.
네 업무는 네 업무고 내 업무도 네 업무라는 신념으로 최소한의 업무량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반사해내는 은빛 거울색.
어려운 것을 얘기하면 못 알아듣고, 쉬운 것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백치 아다다 스타일의 순백색.
같이 일하는데 조그만 갈등에도 머리 뚜껑 열어서 파이어 브레쓰를 뿜어내는 용암같은 붉은색.
위와 같은 색깔을 좋아하지는 않을 테지만, 한번이라도 그런 색깔을 비춘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개발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개발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개발자이며, 또한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았지만, 깊은 생각과 색다른 결론 대신 매번 지엽적이고 상투적인 상념에만 그치곤 합니다. 바쁘게 일하고 버그와 씨름하고 이슈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중년의 개발자가 되어갑니다. 빌 게이츠 정도는 쉽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신입 시절의 패기는 사라지고, 생계형 개발자가 되어 자신보다는 가족의 꿈을 위해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개발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난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정신분석학 용어인 페르조나(persona)는 일종의 사회적 가면을 의미합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적 가면 역시 페르조나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개발자들 역시 이 페르조나가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발자 이전의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 있습니다. 많은 중년들이 그러하듯이 개발자들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면 페르조나는 붕괴되기 마련이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결국 개발자의 삶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고, 다시 치킨집 사장이라는 새로운 페르조나를 뒤집어 쓰게 되지만, 그것은 맞지 않는 가면일 확률이 큽니다.
당신은 어떤 개발자인가요? 그 질문에 앞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아를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 올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본연의 나를 직시하고 갖은 얼룩과 잡동사니 가운데 빛나고 있는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해야 합니다. 개발업무를 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일들을 자신이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결국 개발자의 모습뿐만이 아닌 본연의 나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본연의 나를 깨달았으면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먼저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으세요.
중용의 첫 구절은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하늘이 만물에게 부여해준 것은 본성이며 성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도이며 도를 닦는 것은 가르침이다'이라고 시작합니다. 개발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습, 본래의 색깔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