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AI를 이기는 소프트웨어
"미래의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그 둘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과 프로그래밍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체코 출신의 철학자 빌렘 플루세르가 한 말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듣기에 솔깃한 말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 난 프로그래머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죠. 개발자는 프로그래밍을 하지만, 대부분 정해진 프레임 안에 갇혀 있습니다. 누군가가 앞서 프로그래밍해 놓은 도구를 그저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개발자가 이미 만들어진 환경 안에서 주어진 방법론과 도구들을 사용해서 프로그램 코드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발자들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프로그래밍을 당하는 사람일까요? 비약이 지나친 것인지도 모릅니다. 프로그래밍은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배자는 룰을 만들고, 피지배자는 룰을 따라야 합니다. 동물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따르면 됩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서 살아갑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규칙은 인간세계의 규칙과는 다를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매트릭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연상될 수밖에 없네요.
이 시대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은 미디어(Media)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입니다. 오늘날 미디어의 핵심은 영상 언어입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들입니다. 이제 미디어는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플루세르가 말하는 프로그래밍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기 보다는 '미디어를 창조하는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언어와 같은 최신의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반대로 그 미디어의 지배를 받는 사람, 이렇게 미래의 인간이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미디어를 지배하는 이들이 이미 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만드는 자는 이미지(영상언어)와 텍스트(문자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텍스트는 상상력을 압축해 놓은 것이고 이미지는 그 압축된 상상력을 다시 실세계에 펼친 것입니다. 텍스트가 프로그램의 코드라면 미디어와 이미지는 프로그램의 실행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텍스트는 미디어와 이미지의 근간이 됩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도 텍스트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언어로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와 언어는 상호 의존적으로 발달합니다. 이는 다양한 실험으로 이미 증명된 이론입니다. 카를 뷜러와 같은 언어심리학자들은 어린 아이와 침팬지의 예로 이를 설명합니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어린 아이는 언어적으로 사고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시기의 어린아이와 침팬지는 도구를 사용하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거의 유사한 능력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이의 문제 해결능력이 급격히 향상됩니다. 단시간 내에 아이는 침팬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을 만들어내는데 외부세계의 입력과 출력은 모두 ‘영상언어’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입니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창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텍스트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이미지 속에 깔려 있는 텍스트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또한 그렇게 읽어낸 텍스트로 또다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텍스트를 다시 이미지화해서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IT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미디어를 창조하고 지배하고 있는 거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프로그래밍을 당하는 자'가 아닌 '프로그래밍을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846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