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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Apr 08. 2022

점과 점을 잇다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

소크라테스와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 애플을 애플답게 하는 것,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다 - 스티브 잡스


IT역사를 통틀어서 스티브 잡스만큼 인문학과 연관되는 명사는 없다. 비록 잡스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전형적인 엔지니어는 아니었지만 그를 창조적인 개발자의 전형이자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괴팍한 젊은이는 항상 삶의 의미와 지혜에 목말라했다. 잡스의 첫 직장은 당시 잘 나가던 비디오 게임 업체 아타리였다. 아타리를 다닌지 1년 정도 되던 시점에 잡스는 해외 출장을 갔다가 복귀하지 않고 그냥 인도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렸다. 깨달음을 찾아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훗날 잡스는 인도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직관을 사용합니다. 직관력은 매우 큰 힘을 발휘합니다. 지능이나 이성적인 사고보다도 훨씬 큰 힘입니다."


직관은 다른 말로 경험적 지혜다. 잡스는 인도여행을 통해 서구사회의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직관을 깨우고 지혜를 얻기 위해 선과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이 시기의 인도 여행과 그의 인생을 통해 추구한 깨달음은 애플의 광고모토이자 그의 철학이기도 했던 문장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로 집약된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은 기술이 아닌 기술 바깥에 있었다. 잡스는 미래지향적 인간이었다. 그는 오늘이나 과거가 아닌 내일의 가치를 중시했다. 내일의 가치는 고객의 생각으로부터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잡스의 지론이었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포드는 "내가 만약 고객에게 요구하는 것을 물어보았다면, 고객은 더 빨리 달리는 마차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잡스는 포드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장조사를 통해 제품을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무엇인가를 직접 보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비틀스의 음악이 대중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비틀스가 나와서 대중들이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다만 잡스에게는 이런 면이 너무 지나쳤기에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악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그런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한 문제가 쌓이고 쌓여 잡스는 그가 세웠던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아마 이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인도 다음으로 떠나게 된 야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이 아니었을까. 이 과정을 통해 잡스는 인격적으로 조금 더 성숙해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선과 명상이 함께 했다. 


스티브 잡스의 삶은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여정과 닮았다. 영웅은 모험을 떠나고 시련을 만나 큰 위기에 부딪히지만 조력자를 만나 위기를 뛰어넘어 큰 성취를 이루고 다시 원래 자리로 회귀한다.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지만 그가 인수한 픽사의 3D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다시 화려하게 애플로 복귀를 한다. 또한 당시 그가 세웠던 회사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운영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는 훗날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제품의 베이스 플랫폼이 된다. 잡스는 개발자가 아니었이지만 다른 어떤 개발자들보다 IT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잡스는 흔히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비교되곤 했는데, 그 둘은 성향상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빌 게이츠는 프로그래밍 언어(베이직), 운영체제(MS-DOS와 윈도우), 그리고 어플리케이션(MS오피스)라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분야들에 경쟁자들을 제끼고 정상에 오름으로써 시장을 정복했지만, 잡스는 아예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애플II, 매킨토시,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IT 생태계를 전 세계에 펼쳐 놓은 것이다. 


메멘토 모리! 점과 점을 연결하다

잡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이 그의 영웅적인 삶을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잡스가 더 영웅적이고 더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매일 죽음이라는 것을 눈 앞에 두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잡스가 거둔 외적인 성취가 아니라 그가 겪었던 내면의 여정이다. 잡스는 항상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잡스에게 있어 선과 불교를 통해 추구한 깨달음은 죽음이라는 종결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서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이다.


많은 이들이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을 가장 감명 깊은 장면으로 기억한다. 앞서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교 졸업연설에서 빈곤퇴치와 인류애를 얘기했지만 이 날 잡스의 연설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잡스는 이 연설에서 자신이 걸어온 내면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짧았던 대학시절 배웠던 서체 수업에서 창안하여 매킨토시에 적용했던 캘리그라피에 대해 언급하면서 잡스는 그가 글자와 글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 터득했다고(I learned about the space between letter combination) 말했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검은 부분을 보았지만, 잡스가 본 것은 여백이었다. 그것은 무한한 상상의 공간이었다. 이어서 잡스는 점과 점을 잇는다고 말했다. 점과 점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여백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여정에서 거쳤던 점과 점들이 훗날 만나서 또다른 의미와 또다른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의 인생에 있었던 수많은 점과 점들이 이어져서 지금의 자신과 애플, 그리고 그가 열정을 다해 만든 분신과도 같은 제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점과 점,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선은 직관과 가슴이 시키는 일을 따른 흔적이었다. 잡스는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당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이미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Stay foolish, 이성이 아닌 직관, 무엇보다 우리의 가슴이 외치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개발자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잡스의 마지막 유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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