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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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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Nov 10. 2018

#35 사람과 사람 사이 - I

바라봄의 거리에 대하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한달전쯤 지인들과 함께 1박2일로 근교 펜션에 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아침에 일어나 찍은 펜션에서 바라본 호수의 아침이 오는 모습입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아침 산책을 나갔는데, 가까이 가보니 너무 별로더군요. 군데군데 낙시터가 있었는데, 간밤에 비를 맞은 쓰레기들이며 호숫가에 둥둥 떠있는 캔이며 페트병까지 지저분했습니다.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원래 그런건지 아침 한때 지난밤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가까이서 바라본 호수의 모습은 아주 별로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일수록 가까이 가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아는 분이 몽골여행을 다녀오셔서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넓은 초원과 멋진 나무가 있는 끝내주는 풍경에 설레임을 안고 가까이 가보니 개똥천지여서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나이드신 분은 사람을 가까이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가까워지면 보기 싫어도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안 좋은 면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크거나 어두운 면을 더 주목하게 되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는 어느정도가 적당한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 걸까요? 


경치의 정점에 있기 위해서는 알맞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펜션에서 맞은 그날 아침 호수의 아름다움과 지저분함 모두를 본 제게 있어 경치의 정점은 멀리 호젓한 펜션에서 바라본 신비로운 운무에 감싸안간 이른 아침의 호수 풍경일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멀리서 보고 만족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가까이 가게 마련이죠. 그리고 그날의 저처럼 후회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냥 멀리서 보고 만족할 걸 그랬다고 말입니다. 다시 돌아온 펜션에서 바라본 호수의 모습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호수가 변한건가요? 멀리서 바라본 호수의 아름다움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호수는 그대로인데, 제 마음이 변한거죠. 


그럼 결국 모든 것들에게는 가장 보기 좋은 일정한 거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거리라는 것은 사실 사람 마음대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호젓한 펜션 발코니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굳이 오물과 악취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호수의 풍경에 온갖 쓰레기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거리에서 만족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대로, 멀리 있으면 멀리 있는대로 좋은 면들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단점 때문에 처음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왔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폄하하곤 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아름다운 호수 역시 내가 보았던 호수의 일부이고, 오물로 얼룩진 그 내부 역시 그 일면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소홀함이나 친밀감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정 스님이 말한 '알맞은 거리'란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아닌 내 마음 속의 거리를 말합니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소홀히 생각하면 마음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충분히 단점을 상쇄할 만한 좋은 점들이 많음에도 내 마음 속의 거리가 멀다면, 그것은 내게 또다른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런지요? 안 좋게 보이는 것,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본인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입니다. 그것이 함께 사는 방법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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