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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Nov 14. 2018

#36 사람과 사람 사이 - II

배려와 정情

사람과의 관계는 그 관계의 형태와 종류에 따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가족간에 주종의 충성을 요구할 수 없고, 처음 만나는 비지니스 관계에서 의리나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가장 끈끈한 인간관계는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친구로 이어지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일수록 헐겁기 마련이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정(情)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이해관계로 만나게 된 직장동료간에도 정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정(情)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신뢰와 믿음이기도 하고, 의리가 되기도 했다가 가끔은 떼어놓을수 없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그 크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회사에서 오래 있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동료가 떠나는 섭섭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 동료가 회사를 떠나기전,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고민했을 때 필경 우리와 나눴던 정과 추억들을 저울에 달아보지 않았을까. 그가 떠남으로써 얻는 유무형의 가치가 머무름으로부터 얻는 가치들보다 컸기에 그는 떠났을테고, 그 머무름의 가치들 중에 아주 조금이라도 석별의 정이라는 것이 들어있었을 것이리라.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우리는 인간관계를 돈으로 바꾸는 상상을 하곤 한다. 우리의 우정은 천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돈 몇 푼에 쉽게 배신하는 우정도 있다. 우리 큰 아이는 나에게 무한원을 줘도 가족과는 바꾸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한다(초딩에게 가장 큰 돈은 무한원이다). 나 역시 세상 전부를 다 준다고 해도, 우리 가족과 내 아이들을 맞바꿀 생각은 없다. 정은 사랑이고, 믿음이다. 가족처럼 불가항력적인 운명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속정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견고하게 자라나는 우정까지, 그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까워지고 끝내는 하나가 된다.


 그럼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배려라고 생각한다. 배려의 사전적 정의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씀'이다(네이버 국어사전). 내가 생각하는 배려의 정의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상대방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배려는 정(情)의 또다른 이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철에서 임산부나 어린아이를 보고 즉각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주는 일,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는 일, 허겁지겁 달려오는 누군가를 위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어주는 일 -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작은 배려의 모습들이다. 


속정은 있으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나에 비해 내 아내는 정이 많고 표현하는 성격이고 배려심이 깊다. 소심한 성격이 그녀가 가진 배려심에 한몫 하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지만, 여하튼 내 아내는 배려의 아이콘이다. 사람이 붐비는 휴게소에서 대부분 밥먹고 밥그릇만 치우고 돌아서기 바쁜데, 아내는 항상  먹었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한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고 사먹는 음식값에 치우는 값도 포함되어 있을텐데, 먹고 나면 아주머니가 어련히 치우련만, 아내는 항상 먹었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같이 오래 살아서 확실히 아는데, 아내는 결코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또한 우리 집 식탁 위를 보면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아내도 동의했다. 쿨한 여자다.). 아내는 약자에게는 약하고 강자에게는 강한 사람이다( 난 우리집 최약자인데 왜? ㅜㅜ ). 체구는 작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결국 배려라는 것도 사람의 성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려 하면 생각나는 간디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간디가 기차에 올라탔는데, 신발 한짝이 벗겨진채로 기차에 올라탔고 기차는 그냥 출발해 버렸다. 그러자 간디는 나머지 신발 한짝도 벗어 던졌다고 한다. 신발을 주울지도 모르는 어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였던 셈이다. 배려는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지만, 나 또한 따뜻해진다, 세상은 함께 따뜻해진다. 젊은 날에 나 밖에 몰랐던 사람도 나이가 듬에 따라 세월의 지혜가 쌓이고 인생의 겸손함을 깨닫게 되면서 삶에 배려가 깊숙히 스며들기도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배려 깊은 사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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