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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동백꽃 피는 북한산

 지난해 내게 가장 감동을 줬던 꽃? 동백꽃이다. 

우연히 TV를 돌리다 보게 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마음을 뺏겼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중에 가장 끈끈한 가족의 사랑이란 보편적인 주제였지만

캐릭터의 신선함과 공백을 찾을 수 없었던 배우들의 명연기, 멜로와 스릴러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은 구성,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생동감을 넣어준 작가의 글이 나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 같다.    

  

 요즘 난 우리 마을에서 동백꽃 필 무렵의 공간이 됐던 ‘옹산’을 떠올린다.

어제저녁엔 퇴근 후 우연히 마을 ‘번개 모임’에 초대됐다. 홍차를 시키면 물어보는 당도와 비교하자면 친밀도 1에서 5까지 다양한 이웃들이 모여 적당한 술과 적당한 당도만큼의 이야기를 나눴다. 어른스러운 5세부터 

수줍은 14세까지 아이들도 함께. 별 얘기도 아니었고,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모두 ‘달달 했다.’ 가끔 우린 그렇게 편하게 모여 소소한 추억을 쌓고, 보이지 않는 위안을 얻는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즐거운 일상이다. 우리는 옆집 덕을 많이 본다. 옆집 도롱뇽 형님은 고향이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임자도다. 그래서인지 철마다 싱싱한 해산물이 배달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친구가 바다에서 잡았다는 물고기도 있었고, 4촌 형의 사돈의 8촌쯤 되는 분이 사서 보냈다는 전복도 있었다. 또 마장동에서 가져온다는 곱창도 있었는데, 아내가 손꼽아 기다리는 곱창은 아직 말뿐이다. 또 옆집의 

디자이너 형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요리사다. 각종 찌개와 국은 기본이고 닭볶음탕, 파스타, 스테이크 등 

다양한 요리를 맛있게 해서 이웃들과 자주 나눠 먹는다. 난 형에게 디자이너 그만하면 식당을 내라고 

얘기하는데,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이익이 남지 않을 거라며 사양한다. 아, 요리사 한 분을 빼놓을 뻔했다. 고향이 포항이고 한옥에 사는 이분은 깔끔한 맛의 탕을 잘하는데, 술이 살짝 취하면 갑자기 냉장고를 털기 

시작해 다양한 안주를 만들어 대접한다. 그래서 이 집의 애칭은 ‘실비집’. 하지만 요즘은 이 실비집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서 이분이 술을 먹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냉장고 문을 열기 시작하면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끝내려고 노력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준거집단에 대해서 간혹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을 때일 거다. 

“너 생각이 옳아.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아” 이 말을 듣고 싶어서일 거다. 대부분은 가족이나 회사, 

더한다면 친한 친구들의 모임이나 종교 모임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갖고, 자신의 말과 행동의 준거를 찾으려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해 동네 사람들에게서 부담되지 않은 약한 고리지만, 준거의 의미를 찾는다. 아마 우리 이웃들도 그러지 않을까?      

 

<마을 아이들이 참여하는 핼러윈데이 행사>

“나는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 않고 달려드는데 발밑에 움켜쥘 흙과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밑이 단단해지다니… 이제야 곁에서 항상 꿈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가 드라마 가장 마지막에 쓴 글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다. 

공효진이 건조하지만 착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읽었다.      

 

 어젯밤 달달한 마음으로 집에 오던 길, 생각해 보니 항상 꿈틀대고 있는 북한산의 바람과 별이 떠 있는 예쁜 하늘이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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