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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지금도 인생이다'


 ‘지금도 인생이다’ 

선지자나 선구자, 유명한 철학자가 아니라 수안이가 최근에 ‘10대를 위한 그릿’이란 책을 읽고 갑자기 던진 

말이다. 마치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그래서 자신은 지금의 인생을 충분히 재미있고, 알차게 보내겠다고 한다.       

‘어... 그래라’ 

사과나무에서 갑자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뉴턴을 보는 느낌이랄까? 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이란 별거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짧게 답했다.       


 찬찬히 돌아보니, 안 그런 척하면서도 아이를 대할 때 나의 기준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꿈이 뭐야?’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이런 질문을 자주 던졌고, 가끔 나무랄 때는 ‘그렇게 해서 좋은 학교 가겠니?’ ‘훌륭한 어른 되겠어?’ 이런 영혼 없는 물음으로 아이를 채근했다.  치열한 경쟁 사회, 특히 AI가 더 

많은 직업을 가져갈 미래 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부모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지금도 

인생’이라는 아이의 외침은 그런 당연함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물음을 내게 주었다.


 나 역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행복한 오늘을 채워주는 건, 누구에 의해 강요되거나, 무심하게 보낸 과거의 그 어떤 날들은 아닌 것 같다. 오로지 내 의지로 오늘에 충실했던 

과거 내 모습과 추억일 때가 많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절을 묻는다면, 군 제대 후 언론사 준비를 

할 때도 아니었고, 입사해서 수습기자를 할 때도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3학년 1학기 때까지 학교 

방송국에서 보냈던 2년 반의 시간이었다. 방송과 교육, 세미나, 회의 등 촘촘하게 짜인 방송국 일정에 

학과 수업 그리고 틈틈이 아르바이트와 운동까지 하느라 30분, 1시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썼다. 정말 

바빠서 연애도 한 번 못 했는데, 기쁜 가슴 떨림과 아픈 가슴앓이는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조금 더 거꾸로 돌려 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아니라 교회에서 보낸 시간도 행복을 소환해주는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에겐 용서를 빌 일이지만, 그 시절 예배를 보는 것보다 예배 이후 친구들과의 교재가 10대 후반, 사춘기를 무방비로 관통하고 있었던 내겐 훨씬 더 소중하고 시급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한 얘깃거리는 없었다. 작은 교회였지만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았는데, 예배를 마치면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농구나 탁구도 하고, 고민 상담도 하고, 그러는 사이 난 가끔 설렜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의 편린들은 2~30년이 훌쩍 지난 오늘도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행복 자체가 되기도 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는 가끔 여행을 가서 과거를 곱씹으며 일상에서 

부족했던 감정의 진폭을 키우고, 가끔은 골프를 치며 많이 웃는다. 지난주엔 교회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30년 전 풋풋했던 ‘교회 오빠’ 시절을 회상했다. 셋이 사진을 찍어 연락이 닿는 여자 친구에게 보냈더니 금세 다른 여자 친구를 통해 그 사진이 돌아왔다. 좀 더 자주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수안이는 말 잘 듣는 착하고 예쁜 딸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무엇을 하든 잘해야 한다는 욕심도 있다. 

아주 가끔은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슬퍼하거나, 이해 안 되는 이유로 부족했던 노력을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받아줄 만한 귀여운 투정 수준이다.      


 수안이는 운동을 좋아해 리듬체조를 3년 정도 했고, 독서를 많이 하고, 글도 꽤 잘 쓰는 편이다. 대신 음악과 미술 쪽으로는 아예 관심이 없다. 가족을 사랑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고기와 짜장면, 파스타를 즐겨 

먹는다. 그래서 ‘지금도 인생이다’는 걸 깨달은 수안이가 앞으로 원하는 것은 이러한 나의 예상 안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이든 얘기하렴’ ‘아빠의... 지금도... 너로 인해... 소중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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