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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Apr 28. 2020

【엄마의 눈물】

세상 꼰대 중 왕 꼰대가 있다. 그가 내 아버지다. 대체로 우리 세대의 아버지는 다 그랬으리라 하지만 내 아버지는 더욱 그랬다. 서당 훈장님에 한학자셨던 할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고지식과 고집을 무장했고, 당신의 생각이 ‘옳다’라는 확증편향이 있으면 절대로 굽히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너무나 답답했고, 모시기 어려운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식에게만 꼰대는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양성이 평등해야 함을 깨닫고 난 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때론 폭군이었고, 또 너무나 간섭하는 무지막지한 꼰대였음을 알았다.


어느 날 본가에서 어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가 다쳤다며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저 부모가 다쳤다는 말에 경황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신호등 빨간불을 원망하며 카레이서가 되었다. 본가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상황은 그냥 아버지의 사고로만 보이는 환경은 아니었다. 순간 느끼는 부부싸움의 흔적들, 정수기가 쓰러지면서 깨졌고, 그곳에 혈흔을 본 순간 아뿔싸 심상치가 않음을 느꼈다. 건너 방 인기척에 들어가니 아직도 화가 덜 풀려 식식거리는 아버지의 손이 피범벅이었다. 나는 가져간 구급함을 열어 아버지의 손을 소독하고, 피부 재생 시트를 잘라 붙였다. “아버지 좀 참지 그러셨어요. 나중에 엄마 없음 불편하실 건데...” 그러자 아버지는 자식 앞에 놓인 광경이 부끄러우셨는지 눈을 마주하지 못하시고, 헛기침만 하셨다.


다음은 어머니 방으로 갔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랑은 이제 같이 못살겠다. 헤어질란다.” 그리고 어머니는 약 이틀간 집을 비우셨다. 그래도 그간 정을 나누어서인지 어색하게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사과 한마디 없이 전화만 열심히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을 것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통화 연결은 되지 않았어도 메아리 없는 벨소리만으로 그 두 분은 교감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셨다. 앞도 못 보시고, 듣지도 못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침대에 의지해 하루 종일 누워 있다. 가끔은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급하게 이송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눈물이 담긴 전화를 또 받았다. 이전에 들었던 어머니의 눈물과는 아주 다른 깊은 흐느낌이었다. “네 아버지 불쌍해 어쩌냐?” 요양병원 7인실 문간에 억지로 자리 잡아 그곳에 맡기고 온 후 당신은 따뜻한 방에서 잠을 청하려니, 그 상황이 몹시 괴로우셨던 게다. 그렇게 아옹다옹 평생을 싸우고 사셨던 팔순의 노부부가 이제는 이별의 순간이 다가옴을 직감하시는지 서로의 회한이 담긴 눈물을 보이신다. 의식이 없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가끔 듣게 되는지 때론 눈물을 보이신다.


이 시대 최고의 꼰대도 기운이 빠지는 순간이 오고, 꼰대로서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그런데 불쌍하다. 지금이라도 박차고 일어나 다시 꼰대 짓 좀 하세요. 마음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그 최고의 꼰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들던 학창시절의 반항아가 스쳐간다. 아버지는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산다면서 가르치려던 40대의 불효자도 오버랩된다. 그리고 지금 반백이 된 50대 중년의 막내가 세상 최고의 꼰대를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의 눈물을 그만 보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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